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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효율성 아닌 신뢰의 문제

2009-09-24기사 편집 2009-09-2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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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충청도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툭하면 행정도시를 두고 시비가 벌어진다.

한 번은 수도권의 도지사라는 사람이, 다음엔 한나라당의 내로라하는 국회의원이, 또 다음날엔 학자들이란 사람들이 나서 마치 충청권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듯 행정도시를 걸고넘어진다. 그들은 주로 폐지, 축소, 변경, 수정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시도 때도 없이 세종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낸다.

그래도 충청인들은 참고 또 참았다. 머지않아 정부에서 세종시에 대한 확고한 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와 현 정권에 대한 신뢰를 아직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제대로 한 방 맞았다. 지금까지 얻어맞은 펀치 중에 가장 위력이 세다. 그것도 같은 충청도 사람한테 맞은 것이라 상처가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세종시의 비효율성’을 들어 “서울의 위성도시가 아닌 자족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며 행정도시 원안 추진 불가론, 즉 세종시 수정론을 들고 나왔다. “원안 추진이 아닌 그 어떤 방안도 위법”이라는 야당의원들의 지적에도 도리어 “소신”이라며 굽히지 않고 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행정도시가 행정 효율성과 자족의 문제인가. 행정도시는 분명히 신뢰의 문제이며 국민과의 약속 이행의 문제다.

행정도시 관련법은 우리나라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두 번이나 심판을 받았다. 당시에는 충격적이었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행정수도가 관습법 위반”이라는 해괴한 논리도 수용했다. 위헌 소지를 완전히 제거해서 다시 만들고 또다시 헌법재판소의 소원을 거쳐 합헌 판정을 받은 법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다. 이 법은 무엇보다 국회에서 충분한 법률적 검토를 거쳐 여·야 간 합의에 의해 제정됐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도 당론으로 찬성을 결의했던 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행복도시를 안 한다는 것은 모략이다”라고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대표 시절 “세종시 원안 추진은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꼭 그렇게 할 것”이라고 수차례 다짐했다.

행정도시 건설은 또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통해 헌법상 국가의 책무인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추진하는 핵심 국가사업이라는 의미도 있다.

때문에 세종시의 축소 변질 의도는 명백한 위법행위다. 효율성을 운운하면서 대안이나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수정론을 내세우는 것은 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기조를 무시하는 처사다. 정부가 이전기관 변경 고시를 미루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정 후보자의 세종시 원안 불가 입장은 소신이 아니라 행정도시법의 근본 취지를 모르거나 아니면 모조리 부정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말 그대로 행정중심복합도시는 행정기능 중심의 복합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 대법원과 정부부처 가운데 통일·외교·국방·법무·행정자치·여성부의 6부는 서울에 남기고 재경·교육·문화관광 등 12부4처2청(현 직제로는 9부2처2청)을 연기·공주지역으로 이전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행정부처 이전을 위한 고시 등 행정실무절차는 전혀 이행하지 않고 행정 비효율성과 자족기능 부족 등을 운운한다. 또 세종시는 유령도시가 될 것이고, 길거리 정부가 될 것이라며 원안 수정론을 펴고 있다. 유령도시가 우려되고 자족기능이 걱정이 된다면 그 대책도 함께 내놓아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적어도 한 나라의 총리 후보자로 행정도시의 효율과 자족을 논하려면 논리와 대안을 제시해야지 막연히 가치가 없다고 하면 충청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운찬 총리 내정과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여권 핵심에서 세종시 원안 수정 의지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총리 인사청문회는 바로 그 공론화의 포문을 연 셈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총리 후보자의 대국민 설득은 실패했다. 이제는 최후의 순간까지 왔다. 대통령이 답을 줄 차례다.

법과 정치가 지배하는 세상은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가 없으면 분열이 생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신뢰를 잃으면 국가 전체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법치는 무너지고 만다. 세종시 문제가 단순히 행정·경제적 효율로만 풀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종시는 신뢰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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