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 CEO로서의 자질 살펴보기

“삼국지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저자가 책의 서문 벽두에서 한 말이다. 공감한다. 동양 최대의 고전인 삼국지의 무대는 전란에 휩싸인 중국 대륙, 수백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장장 100여년에 걸친 대하드라마인 만큼 그 담아낸 이야기의 주제와 스펙트럼이 자못 무궁무진하다.

이 중에서도 조조, 유비, 손권 등 세 영웅은 단연 초특급 주연배우이다. 저자는 이들의 ‘CEO로서의 자질’에 주목하고 있다. 각기 개성이 다른 세 사람의 인재 선별 및 조직관리능력과 상황판단능력, 비전제시능력, 결단력 등 CEO로서의 필수 덕목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분석하는 한편, 이를 적절하게 현대의 경영현장에 투사시켜내는 견해와 솜씨가 일품이다.

당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기회가 될 수 있는 시대였다. 사활을 건 ‘서바이벌게임’에 군사력은 물론 행정·외교·과학·홍보 등 모든 인적·물적·기술적 자원이 총동원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을 펼쳐야 하는 현대의 기업현장과 확실히 닮은꼴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기업에만 국한되겠는가? 모름지기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다 같은 원리가 적용될 터, 필자가 치안행정의 책임자로서 특히 주목해서 읽은 것은 세 영웅들이 하나같이 ‘법과 원칙’을 창업과 치국의 근간으로 삼았다는 점이었다.

우선 조조는 피아(彼我)와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인재 영입에 힘쓰는 등 인재사랑이 남달랐지만 조직관리에 있어서는 추상같아서 ‘법치’를 최우선시했다. 30세 때 제남지방의 치안책임자 시절,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앙귀족과의 연줄을 믿고 포악을 일삼던 현령 10명중 8명을 가차없이 파면하는 강직한 면모를 보였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리나 유지하는 것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이 일이 결국 그의 성공적 ‘데뷔’에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덕장으로 알려진 유비도 뇌물을 요구하며 패악을 부리던 관리를 과감히 응징하였고 욕심 많고 의리 없는 여포를 단호하게 처형토록 하는 등 결정적 순간에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솜에 싸인 강철 유비”라고 표현했다. 손권 역시 최고결정권자가 되자 예상을 깨고 과거 자신에게 시어머니처럼 엄격하게만 굴던 여범을 경리책임자로 중용했다.

천재적 CEO였던 이들은 법과 원칙이 서있는 리더라야 세력이 모이고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법과 원칙의 경쟁력을 정확히 간파했던 1700년전 영웅들, 백주대로에서 경찰관이 폭행을 당하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외에도 이 책은 대목 대목마다 조조나 유비를 헨리 포드, 빌 게이츠, 정주영, 이병철 등 현대의 위대한 경영자들과 적절히 비교함으로써 고금의 유사성에 대한 강렬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또 조조 등 삼국지 인물들에 대한 근세 이래의 재평가 논의를 반영하고 있어 보다 객관적 시각을 만나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가을하늘이 성큼 다가섰다. 하루쯤 편안한 마음으로 창가에 앉아 담백한 문체 속에 유유히 현대와 고전을 넘나드는 기쁨을 누려보시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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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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