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마사아키 日교토대 명예교수 인터뷰

2009-09-21기사 편집 2009-09-2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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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한국침략 용서할 수 없는 역사…민간교류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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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만나 2시간여 동안 고대 백제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국내청 직원을 통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2시간10분 동안 저녁을 함께 했는데 아키히토 천황은 고대 백제에 대해 4가지를 물어 보셨다. 천황은 일본이 백제 부흥을 위해 군사를 파견한 백천강 전투, 무령왕, 성왕, 백제의 일본 불교 전파 등을 주로 궁금해 하셨다. 그 4가지를 놓고 대화하는데 2시간이 지났다.

-아키히토 일왕이 백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나.

▲천황이 무슨 뜻으로 물어 봤는지는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다. 깊은 이유는 모르지만 백제에 대해 깊고 심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만은 틀림없다. 고대 백제사에 대해 제가 쓴 책을 다 읽었다고 말씀하셨고 질문도 백제에 관한 것만 했다. 그래서 놀랐다. 천황과 황후, 저의 제자 등 4명이 식사를 함께 했는데 저의 제자는 긴장해서 밥도 못먹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2001년 12월, “개인적으로는 간무(桓武)천황(737-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462-523)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록된 것과 관련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무령왕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한 셈인데 이에 대해선.

▲무령왕릉이 1971년 발굴되면서 나온 목간(木簡)이 있는데 그 목간의 재질이 일본에서 발굴된 것과 같다는 사실을 제가 알아낸 적이 있다. 그 내용과 함께 무령왕과 고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더니 관심있게 경청했다. 그러면서 성왕 시기의 백제의 불교 전래에 대해서도 물어봐 설명해 드렸다. 백제의 일본 불교 전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백제의 승려인 도심(道深)이 548년에 일본으로 온 기록이 일본 서기에 나오고, 물증에 의한 역사보다는 인간에 의한 역사를 더 중시해야 하므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548년이 맞다라고 말하자 매우 기뻐하셨다. 유물의 역사는 믿을 수가 없다. 인간에 의한 이뤄진 역사가 우선돼야 한다. 588년 도심이 일본으로 건너온 것은 백제의 일번 불교 전례에 대한 증거가 된다.

-백천강 전투에 대해 무엇을 물어 봤나.

▲천황은 백제-일본 연합군이 왜 패했는 지를 궁금해 했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한 뒤 백제 왕실이 분열하고 있었고 나·당 연합군이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일본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패했다고 설명해 드렸다.

-다른 질문은 없었나.

▲황후께서도 인물화상경과 만엽집에 대해 물어 보셨다.

-‘칠지도’와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 불상 ‘구다라관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칠지도는 고대 한·일 관계를 조명하는 가장 오래되고 귀중한 금속문이다. 칠지도에는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주었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부 일본 학자는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헌상했다고 주장하는데, 명문에 헌상했다는 글자는 없다. 저는 일본에서 백제왕의 헌상설을 가장 먼저 비판했다. 문장을 보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문장이다. 구다라관음은 매우 진귀하면서도 백제 불상과의 연관성이 매우 깊다.

-일본 우익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하는데.

▲1965년 ‘귀화인’이라는 책에서 일본 간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왕족의 화신립이라고 썼다. 그랬더니 우익단체로부터 ‘국적(國賊)’이라면서 교토대를 그만 두라는 협박장을 네 번이나 보내왔다. 2001년에 일본 황실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여러차례 협박 전화를 받았다.

-향후 한·일 관계의 방향에 대해선.

▲일본 제국주의 한국 침략 등은 용서할 수 없는 불행한 역사다. 어두운 ‘그림자의 역사’다. 하지만 6-7세기 한반도에서 건너와 일본 아스카 문화를 이끈 역할은 ‘빛의 역사’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민간 교류의 확대를 통해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 속의 백제 탐사와 같은 과거의 한·일 역사를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교류의 틀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이용 기자 yong6213@daejonilbo.com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일본 교토대 사학과 명예교수로 일본 고대 사학계의 태두로 불린다. 1925년생으로 교토에서 태어나 교토공립고교를 거쳐 교토대 사학과에 재직하며 일본 고대사 및 한·일 고대 교류사 연구에 일생을 바쳐왔다.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연구활동과 강연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충남도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도 참석한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 교류사를 연구하고, 고려미술관 개설과 다문화공생사회의 실현 등에 주력해 온 공로로 민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최고훈장인 수교훈장(修交勳章) 숭례장(崇禮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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