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강국 꿈 쏘아 올린 선구자

최순달 박사가 지난날을 회상 하며 인공위성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 빈운용 기자 photobin@daejonilbo.com
최순달 박사가 지난날을 회상 하며 인공위성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 빈운용 기자 photobin@daejonilbo.com
“1992년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센터.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에 환상적인 은빛 꼬리를 흘리며 날아오르던 발사 로켓은 수십 초 뒤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숨 막히는 침묵과 기다림은 ... 3단 로켓이 분리될 때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미션콘트롤룸 안의 사람들이 환호와 함께 술렁였다. 한국의 우리별 1호 위성이 로켓에서 순조롭게 분리됐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는데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기억이다.”

‘대한민국 인공위성의 아버지’ 최순달 박사(78)는 지난 2005년 저술한 자서전 ‘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에서 우리별 1호의 성공 발사의 감동을 이렇게 전했다.

한국의 우주 개발 역사를 언급할 때 최 박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비록 선진국들에 비해 40년 가량 늦게 시작됐지만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의 산증인이다. 최 박사는 지난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우리별 2호(93년), 우리별 3호(99년)를 연거푸 성공 발사시키면서 우주개발의 터전을 마련했다. 다시말해 대한민국 우주개발과 인공위성 역사의 선구자인 셈이다.

KAIST 초대 학장, 체신부 장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최 박사는 지난 1989년 KAIST에 복귀해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한 뒤 연구과제를 고심하던 중 당시만해도 이름도 낯선 인공위성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불모지이다보니 외국 유학을 통해 기술개발에 나서기로 했는데 다행히 자신의 영국 친구였던 다도 박사의 도움으로 KAIST 졸업생들을 영국 서리(Surrey)대학에 유학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 20대 중반의 박성동·장현석·최경일·김형신·김성헌 연구원은 인공위성에 미쳐 우리별 1호를 제작, 우주에 안착시키는데 한몫을 당당히 차지했다.

우리별 1호 발사 당시 일각에서는 남의 땅에서 남의 로켓을 빌리고,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위성을 제작해 ‘남의별’이라는 비아냥도 했지만 연구진들은 성공하지 못하면 ‘도버해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술개발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휴지통도 뒤지면서 배우기에 열중했다.

최 박사는 “지금 생각해도 우리 방법이 가장 좋았다. 곱하기와 나누기를 하려면 더하기와 뺄셈은 기본으로 해야 한다”며 “기초를 이해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돌아오면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물어 볼때가 없어 절대로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3년간의 고생이 바탕이 됐던 탓에 우리별 1호 발사 후 1년 뒤인 1993년 9월에는 자체 기술로 ‘우리별 2호’ 개발에 성공했다. 서리대에서 기술을 배워온 우리 연구진들이 우리별 2호를 개발했는데 위성부품의 국산화 비율도 높였다. 부품 1만2000개 중 800여개를 국산화했다.

특히 6년쯤 뒤인 1999년 5월 인도의 샤르기지에서 발사한 우리별 3호는 ‘진짜 우리별’이었다. 영국 서리대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고 100% 토종기술로 제작, 초일류 소형 토종 위성으로서 위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했다.

그러나 시련도 찾아왔다. 초창기 인공위성 개발을 이끈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우리별 3호 개발에 성공했지만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의 통합 논란에 처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통합은 불발됐지만 그 여파로 박성동 연구원 등 고참 연구원들이 인공위성센터를 떠났다. 이들은 이 때 창업에 나서 지난 2000년 1월 인공위성 제조 벤처기업 ‘쎄트렉아이’를 설립했다. 이 업체는 현재 말레이시아와 두바이 등에 인공위성을 수출하고 있다.

96년 8월 정년퇴임한 최 박사는 이후 쎄트렉아이 회장, 대덕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KAIST는 우리나라 인공위성 개발을 주도하는데 기여한 최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최순달 세미나실’ 명명식을 개최했다.

최 박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젊은 연구원들과 일할 때 였다. 돈도 명예도 없었지만 일에 미치고 보람을 먹고 살았다”며 “대한민국의 소형관측위성은 세계 최고 수준급”이라고 말했다.

최 박사는 또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일용직에 이르기 까지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TQC(Total Quality Control·전사적 품질관리)가 몸에 배야 국가도 발전하고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박사는 지난달 나로호 발사와 관련, “너무 착잡하다. 처음 발사해서 성공한 나라가 그리 흔치않다”라며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위대한 나라다. 내가 한참 일할때는 기술을 동냥하러 다녔는데 이제는 기술을 사러 우리나라에 온다. 힘을 합쳐 서로 격려하면 우주개발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필 기자 jpscoop@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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