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人’ 한민족 본래의 자긍심을 찾아서

기원전 5000년의 아름다운 채색토기 앞에 서면 우리는 금세 무한 상상으로 내달리며 어떤 경이로움에 휘감긴다. 몸과 마음이 한순간 시공의 초월을 경험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치달리는 이 시대에 상고사란 너무 아득한 그늘처럼 여겨진다. 허나 `오래된 미래`라는 말도 있지만 그 가물가물한 과거를 찾아가는 길은 진정한 미래를 향하고 있지 않을까.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 즉 진정한 근원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이 별에 머무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시간과 공간의 그 아득한 심층을 찾아간다는 건 얼마나 지루하고 지난한 작업일까. 하지만 흐릿한 풍경 속 그 길엔 무한 돌아오는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들은 언제나 돌아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저를 올곧게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이 간절했던 것들, 이 시대의 산만한 정신이 늘 놓치고 있던 그것들.

정형진씨는 우리 상고문화의 비밀을 풀기 위해 이십여 년 문헌과 고고학 자료, 그 역사의 현장을 떠돈 재야사학자이다. 그는 세계문화사와 언어학적 연구 성과, 고대사회의 종교적 이데올로기, 매장문화재나 암각화에 나타나는 여러 문양들, 과학을 동원한 인류 이동에 관한 연구물까지 꼼꼼히 검토하면서 한민족의 원형을 추적했다. 동시에 동북지역 역사상황과 중원에서 동북으로, 동북에서 서남으로 흐른 문화의 흐름을 눈여겨본다.

역사는 이웃 집단과의 끊임없는 투쟁과 교류로 이루어진 산맥이다. 긴 세월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후에야 한민족의 혈맥을 잡을 수 있었던 그는 연구방법론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과감히 표출하고 있다. 특히 그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역사 논쟁을 직시하면서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이 회복되길 기원한다. 고구려사를 중국 동북지역의 변방사로 만들어버리는 중국이나 분명한 정치의식에 바탕을 둔 일본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상고사와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의지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상고사에 오롯한 순정을 바친 필자의 고백이다.

필자는 수시아나, 수메르의 동쪽에 있는 평야지대를 한국 상고사와 연결하고 있다. 한민족의 원형 사상인 선맥의 뿌리는 단군이며, 단군의 뿌리는 천산 주변에서 유라시아 문명을 창조한 공공족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가 초기 중원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한다. 수메르인 이전에 메소포타미아에는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명에 도달했던 사람들이 정착해 있었다. 독특한 채색토기로 주목되는 이들은 아시아계와 동쪽에서 내려간 이란계로 훨씬 문명화된 종족이었고 세련된 종교문화를 이미 창안하고 있었다.

환웅세력은 이 지역인 수시아나, 천산 너머의 세계에서 돈황의 삼위산을 거쳐 중원지역으로 들어와 그곳에서 신석기 후기의 앙소채도 문화를 일구었다. 그후 요임금 말년에 현재의 유주로 밀려나면서 동북지역으로 들어와 그 지역(현 북경시 밀운현 연락촌에 4300여 년 공공족이 세운 토성이 발굴, 아직 성터가 남아있다. 지금도 밀운현 중심가에 박달촌의 흔적이 있다)의 역사를 주도하게 된다. 이들 공공족은 여기서 모계사회의 전통을 가진 홍산문화인 곰족(웅녀), 즉 바이칼호 주변에서 동으로 곧바로 이주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즉 유라시아의 서북쪽에서 두 방향으로 이동한 이 두 중심 세력이 한민족의 원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공공족은 신석기 시대 중원에 살던 종족 중 가장 뛰어난 토목기술을 가진 집단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물을 잘 다루었다. 앙소문화를 주도한 공공족은 거의 모든 공예기술을 주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날 우리 민족의 예사롭지 않는 손재주를 이해할 만하다. 공(工)은 목공용구인 곱자나 곡척을 상형, 또는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악기나 하늘과 땅을 세로로 잇는 형상이며 공공(共工)은 두 손으로 무언가를 받드는 모습을 상형한다. 이는 이들이 하늘과 통하며 하늘의 뜻을 받들었음을 의미하며, 이처럼 한민족 정신문화는 하늘과 태양을 섬기던 천손의 뿌리임을 고스란히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천년왕국의 중심 에리두에서 수시아나를 거쳐 천산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온 수신(水神) 엔키의 사자 물고기, 천년왕국의 유습을 이어오는 진한인들의 편두 풍습, 고깔모자를 쓴 단군을 따라가면서 환웅족의 이동과 확산을 추적해본다. 특히 단군이 쓰고 있는 고깔모자의 상징과 그 문화 궤적을 추적하면서, 고깔모자가 한민족의 원형의식을 만든 환웅 세력의 우주생명관과 종교의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밝힌다.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임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한 고깔형 모자는 신석기에 수시아나 지역에서 발생하여 동서로 확산된 문화유습이다. 앙소문화의 주인공은 고깔모자를 쓴 신인(神人)이며, 천주교의 주교관과 무당의 고깔은 천년왕국의 원형문화에 동일한 기원을 가짐을 주장한다.

상고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고대 세계의 역사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적 흐름을 잘 이해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상고사를 보아야 한다. 어느 민족에게나 자신들의 기원을 전하는 신화가 있다. 중앙아시아 문화권의 흔적을 가진 단군신화, 한민족 정체성의 핵심인 단군사상과 풍류도를 조선 유학자들은 끊임없이 약화시켰다. 상고시대부터 현묘한 도인 풍류도를 가지고 있던 한민족은 주변 민족에 비해 결코 미개하거나 나약한 민족이 아니었다. 종교학적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발전한 종교논리와 유불도 삼교의 종지를 포함했다는 것은 매우 뛰어난 문화의식이 있었음을 말한다. 단군신화에 보이는 홍익인간, 제세이화 사상은 오늘날에 적용해보아도 매우 유용하다. 이러한 훌륭한 문화의식을 가졌던 단군시대가 왜 부정되고 왜소화되어야 하는가.

이 책을 덮을 무렵이면 우리 본래에 대한 정신적 자긍심이 스멀스멀 가슴에 차오른다. 고깔모자를 쓴 단군을 보면서 우리 뼈 속에 기록되어 있는 문화적 자산을 회복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된다. 오늘날 우리 민족의 도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곧 역사이며 여기가 곧 역사이다. 21세기를 열어감에 있어 존재의 뿌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만큼 시급한 일이 있을까.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공부해내어야 할 우리의 숙제이다.

진정한 상고사, 생명사는 고대를 재구해내는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에너지, 온몸으로 캐어내려는 의지 속에서 그 깊은 비의를 드러내는 것이리라. 채색토기에 담긴 문양과 고대 암각화 속의 문양을 따라다니는 진지한 눈길에 의해서 말이다.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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