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문 밝히는 ‘천재 사제’…이젠 동반자 같은 ‘멘토-멘티’

박석재 원장과 송유근군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 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photobin@daejonilbo.com
박석재 원장과 송유근군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 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photobin@daejonilbo.com
‘한국의 스티븐 호킹에 도전한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53)과 ‘천재소년’ 혹은 ‘물리 신동’으로 유명한 송유근 군(13)은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멘토(Mentor)’와 ‘멘티(Mentee)’ 사이가 됐다. 박 원장과 송 군은 과학기술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된 지 꽤 오래됐다. 박 원장을 만나면 화제가 단연 유근이로 옮겨지고, 유근이를 만나도 박 원장이 떠오른다. ‘무조건적 반사’인 것이다.

유근이가 대전 대덕R&D특구에 위치한 한국천문연구원에 둥지를 틀고 석·박사과정을 밟게 된 이유도 후원자이자 멘토인 박 원장의 역할이 컸다.

유근이는 만 6세때인 2004년 8월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에 최연소 합격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초등학교를 3개월만 다닌 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정규과정을 검정고시로 학력을 인정받았고, 2005년 10월 인하대에 합격, 국내 최연소 대학생이 됐지만 ‘미완의 천재’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박 원장을 만나면서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속에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됐다.

이들의 만남은 지난 2006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원장은 과학의 달에 한 행사장에서 유근이를 만나게 됐다. 박 원장은 “혼자 공부하는 것 같아 고생한다”며 유근이에게 말을 건넨 뒤 자신이 쓴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도서출판 우주천문 기획 발간)이라는 책을 선물했다. 박 원장은 몇 개월 뒤 유근이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 자신이 선물한 책이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고 유근이에게 “천문학에 관심이 있으면 대전으로 오라”고 말했다.

같은 해 여름방학 송 군을 다시 만난 박 원장은 10여 차례에 걸쳐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을 지도했는데 유근이가 듣던대로 수학과 물리분야에 탁월한 재능이 뛰어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만남은 거기까지였다. 박 원장은 내심 유근이를 지도해보고 싶었지만 ‘천재소년’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하지 않을까 우려해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유근이가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 형편도 넉넉치 못해 고생하는 모습을 본 뒤 유근이가 과거의 천재들처럼 사라지지않을까 걱정스결국 결단을 내리게 됐다.

사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셈이다. 천문학자가 운명이라는 박 원장은 초등학교 시절 밤늦도록 항상 별들과 마주했고, 자연스럽게 천문학을 동경했다. ‘어린이 박석재’는 책에서 배운 내용과 장독대에서 관찰한 별들을 정리해 3권짜리 ‘장독대 천문학’을 만들 정도로 천재였던 것이다.

박 원장은 “과학기술계가 얼마나 못났으면 진짜 영재가 갈 곳이 없느냐”라며 “천재가 사장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도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인연으로 유근이는 천문연구원에서 석사과정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대덕특구에 있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올부터 ‘송유근프로젝트’를 가동중인데 최재동 공군 대령이 지도하고 있는 수학 수업은 대성공적이다. 그동안 아쉬웠던 유근이의 성적도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박 원장은 “유근이를 제대로 못 키우면 국가적 손실이고, 망신”이라며 “내 아들 처럼 여기고 애정을 주고 있다”며 바쁜 와중에도 지도교수로서 교재까지 집필하며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박 원장은 송 군이 15세에는 꼭 박사학위를 따 성공한 천재가 되도록 하겠다며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특히 박사학위도 적당히 주지 않고, SCI급 논문 2-3개를 쓸 정도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박 원장은 “옛날 천재들은 대개 박사학위를 못따서 사라졌다. 박사가 되면 외국연수를 가든지 교수를 하든지 고정자산이 된다. 그때는 범인(凡人) 몇백명보다 나을 것이다. 내 역할은 그때까지”라고 말했다.

송 군은 수학, 물리학 등에서는 발군의 실력과 재능을 보이지만 영어 때문에 고민인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박 원장은 올 2학기부터는 영어 공부도 시킨다는 계획이다.

박 원장과 송 군은 아마추어밴드인 ‘프렌즈’에 가끔씩 참가해 공연도 함께 펼치면서 사제지간의 정을 키우고 있다. 박 원장은 “경제상황이나 형편이 어려울 때 일수록 별을 많이 보세요. 이렇게 넓은 우주가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사니 더 불행한 것”이라며 “수천 개의 별을 보는 어린이는 별이 아니라 그 안의 꿈과 미래를 본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글: 정재필 기자 jpscoop@daejonilbo.com

사진: 빈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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