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변하지만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볼프강 라트(Wolfgang Rath)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관습이 대략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볼프강 라트(Wolfgang Rath)는 그런 낭만적인 결혼관이 만들어진 것이 대략 250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말한다. 18세기의 시민사회에 와서야 이전의 궁정사회의 돈과 권력과 명예에 종속된 사랑관이나 결혼관과는 다른 새로운 도덕률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늘 살펴볼 책은 그 사랑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 볼프강 라트의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이다. 라트는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관념이 인류의 역사 전개 과정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를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관념이 역사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보편적이고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얘기일까? 그렇다기보다는, 사랑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행위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조건에 의해 어떻게 그 모습을 변모시키고 있는가를 라트는 이야기해 준다. 그리스인들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남녀가 한 몸이었던 존재이다. 그 인간이 워낙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되고 급기야는 신에게 도전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제우스 신에 의해서 인간은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 분리된 인간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고 제우스 신은 두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데 그때부터 인간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그럴듯한 상상에 따르면,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비극적이면서도 보편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면, 그건 어느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동일해야 할 텐데,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이 동일하지는 않다는 게 볼프강 라트의 말이다. 그리스 시대의 사랑은 사랑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되 또한 절제를 아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로마 후기에 방탕한 사랑으로 흘러가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엄격한 도덕률을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중세 시대에는 금욕적 사랑의 방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매혹적인 자세의 아프로디테와 비너스가 사랑의 우상이었다면 중세시대에는 바로 성모의 모습이 사랑의 우상이 되는 것이다.

신의 시대이다보니 중세 시대에는 사람이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면 병들어버리고 만다. 그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로망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중세적 규범으로부터 일탈되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는 신중심적이고 금욕적인 사랑의 방식으로부터 인간화된 사랑의 방식으로 이행해오는 시기이다. 그 사랑은 규범화된 사랑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의 개별성으로 들어가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테의 ‘신곡’이 그것을 대표한다.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은 단테의 인간적 경험의 산물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감각이 사랑을 출발시키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사랑의 방식이 변한다는 것은 요즘 CF를 봐도 금세 알아채게 되는 문제이다. 사랑의 대상은 아주 빠르게 변한다. 대중가요 노랫말을 곰곰히 들어봐도 그렇구요. 예전에는 변심한 애인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이다.

이런 사랑관의 변화는 곧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철저하게 남성의 종속물이었다…. 아내는 남자의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그냥 단순한 집안 관리인 정도의 지위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남자는 자기 아내를 제쳐두고 끊임없이 사랑의 대상을 다른 곳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리스 철학자들이 절제하는 사랑을 이야기 했다는 게 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특히 도시문명이 발달하면서부터, 남성과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상태로까지 상승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의 마녀 사냥도 사실은 중세가 거의 끝나갈 무렵의 해프닝이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 시기는 근대사회를 기초짓는 계몽주의가 막 출발하던 시기였다. 마녀라는 것은 근대의 이성 중심적인 사유방식이 중세사회의 어떤 분위기에 주홍글씨를 새겨놓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적 사랑은 바로 18세기를 거치면서 나타난다. 그 이전에는 사랑이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가 있다. 워낙 사치를 좋아하다보니까 아주 큰 빚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그 빚을 갚을 요량으로 발자크는 러시아의 돈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그리고 그 과부도 발자크의 명성을 자기 것으로 할 필요가 있었던 모양이었는데, 그처럼 이루어진 결혼이다보니, 절대왕정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 이외에 별도로 애인을 두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들의 대부분이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금지된 사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스땅달의 ‘적과 흑’에서 쥘리앙 소렐이 경험하는 사랑도 그렇다. 그는 금지된 사랑을 하다 사형을 당하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랑관, 그런 결혼관에 반기를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윤리의식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바로 근대사회의 시민들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바로 그 시민계급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방정식은 절대왕정에서의 귀족계급의 방탕한 생활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을 지니게 되었고, 아마 그게 시민사회의 정치적 이념의 우월성으로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의 방식도 그냥 아무런 배경 없이 주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랑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만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순간일 것이다. 어떤 사랑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일 텐데, 그 선택이 말 그대로 혼자서 해야 하는 선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선택에는 지나간 시대에 펼쳐졌던 사랑의 모습들이 아주 중요한 참고 사항으로 작용을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선택이 아름다운 선택이 되기 위해서 지나온 시절의 사랑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을 자신의 사랑의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닐까? 우리가 책을 통해서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사랑법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지만, 끝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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