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 1동 통장들은 스스로 ‘마당발’이나 ‘머슴’을 자처한다. 길게는 30년 넘게 가양 1동을 지켜오면서 이웃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누구네 집 아들이 어느 대학에 붙었는지를 꿰뚫고 있다. 한겨울 독거노인들의 집을 방문해 이불을 덮지 않거나 문을 잠그지 않은 곳까지 챙길 정도다. 주인집 대소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기는 모습이 영락없는 머슴이다.

19명 통장 모두 같은 마음으로 주민을 사랑하고 섬기다보니 주민들도 항상 고마움과 웃음으로 통장들을 반긴다. 이웃간의 정이 절로 우러나는 이유다.

사실 동구는 대전의 모태지만 신도심 개발로 오랫동안 침체를 겪어왔다. 가양 1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민들이 하나 둘 이사를 떠나고 번창하던 마을은 점점 인구가 줄어들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는 노인들의 기침소리가 더 많아졌다.

전형적인 단독주택 및 다가구 주택 주거지역 인 탓도 인구 수 감소에 한 몫했다.

도심속 마을이지만 토박이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이웃간 인심도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더이상 두고 볼수 없다는 마음에 마을 재건을 위해 팔을 걷어부친 사람들이 바로 통장단이다.

마을 여건에 맞춰 제일 먼저 열악한 경로당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로당 별로 수요 조사를 해 행정지원이 못미치는 곳에는 어김없이 기관단체장, 자생단체의 후원을 이끌어 냈다.

자식 보다 지극한 통장들의 정성에 어르신들이 감동한 것은 당연지사다. 어르신들도 하나 둘 뒷짐을 풀고 골목길 청소나 청소년 선도 등에 앞장섰다. 어르신들이 움직이자 마을 전체가 움직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가양 1동을 내집 처럼, 이웃을 내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쌓였다. 충·효·예가 한데 어우러진 으뜸 동네의 모습도 금새 되찾았다.

이웃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훈훈한 인정이 살아숨쉬는 마을을 가꿨지만 19명 통장들에겐 그만큼 고생도 뒤따랐다.

행정 시책을 홍보하고, 주민들의 여론과 민원을 챙기고, 각종 계도 활동까지 해야 하지만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주민들을 섬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양 1동에서 통장을 하려면 일단 다리부터 튼튼해야 해요. 고지서 하나 만 해도 큰 일이죠. 다른 동네처럼 아파트가 없다보니 일일이 다 돌아야 하고, 직장 다니는 이웃에게 직접 전달하려면 밤 늦게라도 찾아가야 하죠. 그래도 즐거워요. 이웃에 살면서 얼굴 한번 못보는 것 보다야 훨씬 낫잖아요.”

그야 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소리다. 바로 이 말 한마디가 동구에서도 가양 1동을 가장 살기좋은 곳, 생활 속의 행복과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동네로 변화시킨 원동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번진다. 성별도 연령도 제각각인 통장들이 자연스럽게 형님, 동생하며 어울리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가양 1동만의 자랑이다.

한자리에 모으기도 힘든 19명의 통장들을 똘똘 뭉치게 한건 무엇일까.

통장들은 이구동성으로 “구자선 동장”이라고 외친다.

“구 동장이 부임하자마자 19명 통장들을 계족산으로 끌고 갑디다. 산을 오르면서 많은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지만 산행을 마친뒤에는 마음 한켠이 뭉클했어요. 우리 통장들 힘든 것을 이해하고 다독여주기 위한 산행이란걸 알았으니까요.”(박대남 통장협의회장·10통장)

“그날 점심으로 내 온 오리고기에 힘든 것, 서운한 것이 모두 사라졌어요. 다들 이런 동, 이런 동장이 또 어디있겠냐며 우러나서 주민들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자고 다짐했죠.”(강환택 5통장)

통장들의 마음이 가뿐해지자 가양 1동 전체의 표정도 달라졌다. 가양 1동엔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주민도, 아침 대청소에 나오지 않아 벌금을 무는 주민도 없다. 가양 1동이 동구 전체 마을의 벤치마킹 대상인 것도 이런 이유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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