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50주년 기념행사
성심당 50주년 기념행사
“이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빵입니다.”

6일 오후 8시 대전역 광장. 성모의 집에서 나눠주는 무료급식을 받은 한 노숙인이 오마르타 수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무료급식으로 밥과 함께 제공되는 빵이 그것이었다.

오마르타 수녀는 “처음에는 거칠기만 했던 분들이 빵 하나로 마음을 열고 있다”며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빵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0년을 넘게 이어온 성심당의 ‘빵 나누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성심당이 어려운 이웃에게 빵을 전한 것은 창업자인 고 임길순 옹이 시작했다.

함경도 출신의 임 옹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쪽 행을 선택하면서 ‘살아서 남쪽에 도착한다면 반드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결심하게 된다.

거제도를 거쳐 대전에 정착을 하게 된 그는 대전역 앞에 찐빵집을 차린 뒤 마침내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해 나간다.

먹을 거리가 절실했던 시절, 쪄내기만 하면 맛이 살아나는 찐빵은 굶주린 이들에게 한끼를 나기에 충분했고 임 옹은 이를 주변 쪽방촌과 걸인들에게 나눠줬다.

찐빵에서 빵으로 업종이 바뀌고 임영진 현 대표로 대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성심당의 ‘빵 나누기’는 변하지 않는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여기에는 카톨릭 정신에 기반을 둔 경영이념도 큰 몫을 했다.

53년 동안 이어지면서 손길이 미치는 곳도 다양해졌다.

노인사랑운동본부,지역 아동센터,외국인 이주노동자센터 등 지난 7월에만 80여 곳의 시설에 빵을 나눴다.

하지만 임 대표는 “그저 남은 빵을 이웃과 나누는 것 뿐인데 이것이 선행으로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생각해 보건데 저희가 공짜로 빵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성심당에서는 남는 빵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입소문을 통해 자연스런 광고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생각지도 못한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 준 것이지요”라고 설명했다.

그날 구운 따뜻하고 신선한 빵을 팔고 남은 것은 이웃에 나눈다는 철칙이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침은 회사를 존폐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바람이 대전지역에도 몰아치면서 중구 대흥동 천주교회 앞은 시위대와 전경의 대치가 빈번했다.최루탄이 터지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거리에서 영업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했고 임 대표는 만든 빵을 배고프고 지친 시위대와 전경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정부기관에서 임대표를 불러 시위대에 빵을 나눠준 연유를 캐물으며 조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임 대표는 “다행히 동네분들의 증언으로 문제는 잘 해결됐다”면서도 “똑같이 일이 생긴대도 빵을 나눠줄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얼마 전 동구 삼성동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임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대전에서 제일 유명한 빵 집을 경영하는 그가 부럽다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임 대표는 “편지를 통해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성심당은 대전시민들이 만들어 준 회사고 그만큼 책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앞으로 빵 나누기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꿈에 멘토가 되어주는 것까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형의 가치를 지역 사회와 나누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백운희 기자 sudosim@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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