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막내딸 장애 원망도 했었지만 세상 눈뜨게 해준 천사 같은 존재”

막내 딸 명은이 볼에 뽀뽀하고 있는 박영실씨.
막내 딸 명은이 볼에 뽀뽀하고 있는 박영실씨.
“나는 오늘 여자가 될 수 없다. 흑인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장애인이 될 수는 있다.”

50대 중반의 여성이 강단에서 부드럽지만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녀는 미국의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을 인용하며, 학생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장애인부모회 소속인 박영실(55·여)씨. 박씨는 3명의 딸 중 막내딸인 김명은(28)양을 장애인으로 뒀다.

명은양은 엄마 뱃속에서 세포 분열할 때 5번 염색체에 문제가 생겨, 정신지체를 앓는 희귀한 병을 갖고 있다.

“명은이는 글자도 모르는 완전 무식쟁이에요. 그래도 얼마나 잘난 척 하는지 몰라요. 엄마, 아빠, 언니들을 완전 무시하고, 손가락 하나로 자기 부하 부리듯 해요.”

삶의 고단함이 묻은 이야기지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박씨의 재밌는 언변에 동화돼 함박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길에서 혹시 우리 명은이를 만나면 여러분들은 언니, 누나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부르는 듯한 박씨의 말에 학생들은 “예~!”라고 밝게 화답한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앞에 둔 강단에서 그녀는 무척 밝다못해 당당함이 묻어난다.

박씨는 막내 딸을 키우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른 좋은 점이 더 많이 생겼다며 밝게 웃는다.

그녀는 20여년 전 명은양을 안고 하루에 10번 넘게 버스를 타고 대전과 청주를 오갔다.

당시 대전에는 장애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한군데도 없어 청주에 있는 교육실에 다녔고, 초등학생, 유치원생이었던 명은양의 언니에게도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고사하고, 목도 못 가누는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동안 청주의 조기교육실을 다니다가 대전 삼성동에 중증장애아 어린이집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명은양의 이름을 붙여 ‘명은어린이집’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지금은 ‘명은주간보호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고생하며 보냈지만 박씨의 입가엔 늘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편한 감정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씨의 첫째, 둘째딸은 유난히도 똑똑했고 예뻤다.

막내딸을 낳기 전까지는 장애인의 엄마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명은양을 낳고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거지?”라며 한참을 괴로워했다. ‘나쁜 일 한적 없이 착하게 살아왔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원망했다.

‘어린 시절, 길에서 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무서워서 도망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랬던 박씨의 인생관이 명은양이 태어나면서 180도 달라진 것이다.

박씨는 “세 명의 딸 중 막내인 명은이가 장애인으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요. 명은이가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소중한 존재랍니다”라며 오히려 자랑했다.

아기천사같은 막내딸을 안고 있는 박씨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강한 아름다움과 고귀함이 느껴졌다.

김정규 기자 gija007@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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