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百濟人삶·애환 품고 역사는 오늘도 도도히 흐른다

1965년 제11회 백제문화제 기간 열린 삼천열혼제. 백마강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와 백제 여인의 숭고한 정절을 추모하고 있다.
1965년 제11회 백제문화제 기간 열린 삼천열혼제. 백마강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와 백제 여인의 숭고한 정절을 추모하고 있다.
금강의 물길과 역사, 문화, 생태는 물론 금강에서의 삶의 모습까지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금강의 어제와 오늘전’ 부여군 전시회가 오는 7일부터 13일까지 부여군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다. 금산, 청양, 논산에 이어 네 번째 순회 전시회. 백제 왕도의 꿈과 한을 간직하고 흐르는 백마강을 중심으로 한 부여의 역사와 문화를 탐색하는 한편 주요 전시 작품을 소개한다.

백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백마강(白馬江)은 충남 부여군을 지나는 금강 구간 16㎞를 부르는 이름이다. 금강이 충북 옥천 등 상류에서는 적등강, 공주지역에서는 웅진강이라 불린 것처럼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 불린다.

‘백제에서 제일 큰 강’이란 뜻의 백마강은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의 물줄기로 사비성을 품고 있는 부소산을 반달처럼 휘돌아 흐른다.

백마강은 일명 백강(白江)이라고 하기도 한다. 강물이 맑고 시원하며 곱기가 마치 비단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시대에는 부여의 옛 명칭 ‘사비’를 따 사비수(泗沘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백마강에는 위로부터 지천, 은산천, 구룡천, 금천 등의 하천이 유입하고 있으며 백마강과 이들 하천이 만나는 지역에는 충적평야(沖積平野)가 형성돼 있다.

백마강이 흐르는 부여에는 국내 최대 선사유적지인 송국리 선사 취락지가 입지하고, 백제의 도읍지로서 123년간에 걸쳐 화려한 백제문화를 꽃피웠다.

당시의 백마강은 백제문화를 전파하는 국제해상교통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백제가 막을 내린 후 국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은 사라졌으나 수운으로서의 기능은 근대까지 계속됐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교통로의 역할과 더불어 삶의 터전으로 백마강은 지역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인지 백마강에는 유난히 나루터가 많다. 육상교통에 의해 그 기능을 상실하기 전까지는 지역 간 물자의 교역은 물론 교통로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자연스럽게 나루터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금강하굿둑 건설과 육상교통의 발달로 인해 수상 교통로의 기능과 어업활동 등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백마강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상징성은 여전히 변함없다.

백마강은 또 1300년전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백제시대의 중요한 국사를 결정했다는 천정대를 비롯해 백제의 왕궁터와 부소산성 그리고 삼천 궁녀들이 충절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뛰어내리는 모습이 꽃잎 날리듯 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낙화암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의 역사와 전설이 땅속에 묻힌 기와파편처럼 무수하다.

이밖에 부소산성과 구드래 나루터, 황포돛배 등 백제의 유고한 역사문화와 함께 천년을 흘러 내려온 아름다운 강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 약탈당한 문화재가 숱하지만, 아직도 ‘야외박물관’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할 만하다. 발굴이 진행될수록 묻혔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와 학계는 물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백마강은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강이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 밀물 때 하구로부터 64㎞에 있는 부여군 규암면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과거에는 200t 정도의 큰 배는 강경포구까지, 소규모 배(50여t)는 130㎞ 떨어진 충남 연기까지 운항할 정도로 내륙 수운이 발달했다.

바닷물과 함께 뭍으로 온 수많은 어종과 수생생물들이 이곳에서 육지의 기운을 느꼈다. 우여와 황복, 참게, 뱀장어 등 지금은 잊혀진 옛 금강의 회유성 어종들의 경계점이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가 전화위복을 꿈꾸는 것처럼 백마강도 백제의 전설을 소중히 간직한 채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비록 지금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의 도읍이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인구 7만여 명의 소도시로 전락해 있지만 말이다.

백마강 뱃길 복원과 금강 옛 모습 살리기, 백제역사재현단지 등 백제문화권 관광기반 확충사업 등을 통해 백제의 역사와 문화와 백마강의 친수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해상강국이자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제2의 전성기가 예고되는 셈이다.

‘금강의 어제와 오늘전’ 부여군 전시회에서는 백마강의 물길과 자연환경,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삶의 모습까지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강을 따라 함께 흐르는 애환과 추억, 사연과 설화가 담겨진 사진 속에서 ‘금강 정신’을 재발견하고 잊혀진 왕국 백제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종구 기자 sunfl19@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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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일제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지역민들이 모여 이 지역 전통인 은산별신제를 마무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37년 일제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지역민들이 모여 이 지역 전통인 은산별신제를 마무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여 나룻배와 버스. 1960년대 신식 버스가 노 젓는 사공의 배에 실려 백마강을 건너오고 있다. 이 멋스런 모습은 1968년 백제교가 가설되면서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부여 나룻배와 버스. 1960년대 신식 버스가 노 젓는 사공의 배에 실려 백마강을 건너오고 있다. 이 멋스런 모습은 1968년 백제교가 가설되면서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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