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걱정 깨끗이 씻어주니 내게도 미소가…”

대전시 중구 중촌동 주공아파트 2단지에서 이순영씨가 1일 수거한 빨래를 세탁하고 있다. 신호철 기자 canon@daejonilbo.com
대전시 중구 중촌동 주공아파트 2단지에서 이순영씨가 1일 수거한 빨래를 세탁하고 있다. 신호철 기자 canon@daejonilbo.com
“회장님 오늘은 빨랫감이 유독 많은데요? ”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를 보면 여러분들이 더 좋아하면서 투정은….”

“팔뚝이 날로 굵어져서 그러지요. 호호호.”

가을향기가 물씬 풍기는 지난 1일.

대전 중구 중촌동 주공아파트 2단지 한쪽에 마련된 빨래방 컨테이너가 회원들의 웃음소리로 들썩거린다.

오물이 묻은 이불을 손 빨래하고, 수십벌의 옷을 반복적으로 개면서도 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유쾌한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정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이곳 현장의 중심엔 이순영 회장이 있었다.

중촌동에서 이씨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중촌 2통장으로, 무료 빨래방 회장으로, 중촌동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으로 통한다.

1주일 가운데 화·수·목요일에는 빨랫감을 수거해 무료 빨래방 회원들과 함께 세탁을 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빨래방 내 목욕실로 모셔와 목욕도 시켜드린다.

월·금요일에는 반찬 만들어주기 봉사를, 나머지 시간은 통장으로서 주민들의 대소사를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남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2001년에는 목욕, 빨래, 반찬 봉사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승합차까지 손수 구입했다.

“9인승 승합차를 샀더니 주변에서 별별 소리를 다 하대요. 그렇게 비싼 차를 사서 왜 그러고 다니냐는 둥, 혹시 미친 거 아니냐는 둥, 겉으론 웃었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의 헌신에 가까운 봉사 이면에는 1996년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을 잃은 상처와 고통을 봉사를 통해 치유하려는 그만의 노력이 있었다.

온종일 남을 위해 살다보니 남편을 데려간 하늘을 원망하는 일도, 밤새 나오는 눈물과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잦아들면서 삶의 희망을 본 것.

그는 이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빨래였다.

하루종일 불우한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빨래를 수거하고, 오물이 묻은 속옷이며, 빨래를 열심히 두들겨 빨다보니 잡생각도, 우울증도 저만큼 비켜나 있는 것만 같았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언제부턴가 빨래 봉사 등을 하면 기쁨이 절로 나서 피곤하지 않은데, 두 손을 놓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거에요. 몸이 아파도 봉사 만큼은 빼먹지 않아야겠다 싶었지요.”

이순영씨가 이처럼 홀로 빨래 봉사를 할 무렵, 1999년 중촌동 복지관 2층에는 무료 빨래방이 만들어졌다. 이후 아파트 단지 마당의 넓은 컨테이너 박스로 이사를 하면서 이씨는 빨래방 회장이라는 또하나의 중책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세탁물을 잃어버리거나 주소를 바꿔 전달해 빨래값을 물어줘야 하는 일도 많고, 예산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지요. 이제는 척하면 척할 정도로 회원들과 손발도 맞고 눈만 봐도 감정 상태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니까요.”

홀로 빨래를 할 때보다는 여건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주일에 3일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빨래를 해야 하나 빨래방의 세탁기는 3대, 건조기는 2대에 불과하다.

이런 소식을 접한 대전시에서 최근 대형 세탁기를 구입, 지원해줬지만 1000여세대의 빨래를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게 이씨의 설명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들을 다 도와드리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가슴 한구석에 남는다는 이씨는 자신의 활동을 봉사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봉사라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이 얻는 것이 훨씬 많아요. 15년동안 이 일을 하면서 자동차 딱지 한번 뗀 적 없고, 혼자 살고 있지만 약 한번 안 먹고 건강해요. 하늘에서 남편이 이렇게까지 도와주는데 더 열심히 해야죠.”

건강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이씨는 오늘도 회원들을 향해 활기차게 목소리를 높인다.

“오물 묻은 이불 빨래 나랑 같이 할 사람 선착순입니다. 조기에 마감될 수 있으니 서두르세요.”

원세연 기자 wsy780@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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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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