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9주년] 大田 아름다운 이야기-2.오정골 지키는 사람들

한남대학 설립부지에서 설계도를 보고 있는 인돈 박사와 대학위원들.
한남대학 설립부지에서 설계도를 보고 있는 인돈 박사와 대학위원들.
주인의 애정 어린 손때가 묻은 가구들과 금방이라도 불을 지폈을 법한 벽난로….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 캠퍼스 안에 있는 인돈학술원은 55년 전 그대로 시간이 멈춰 있다.

기와지붕을 올려 한옥의 멋을 살리되 실내는 50년대 서양의 건축양식을 차용한 이곳은 1955년 한남대학을 세우기 위해 대전에 온 선교사들이 묵던 집이자 동·서양의 문화가 하나로 통합된 공간이다.

당시 한남대 설립자인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 박사는 서양인이 살기에 한옥은 불편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옥과 양옥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집을 짓고자 했다. 덕분에 인돈학술원은 건축 문화의 해인 지난 1999년에 ‘좋은 건축물 40선’에 선정됐다.

‘오정골 선교사촌’으로 불리던 이 지역은 50년생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솔부엉이 등 50종이 넘는 조류가 살고 있는 도심 속 소생물권(Biotope)이기도 하다. 현재 이 지역에는 인돈학술원 외에도 동·서양 절충식 건물 등 총 일곱 채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인돈학술원과 주변 지역이 반세기 넘는 세월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대전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이곳은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자연보호와 사적 보존을 위한 민간단체운동)운동이 한국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대전 최초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오정골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 모임의 핵심 멤버였던 김조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79년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선교사들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남대와 대전신학교 등 두 개 대학에 토지를 균등하게 분할했고 이 후 구역이 각각 나뉘었다”며 “대전신학대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한 건설회사가 토지를 샀고 10000㎡에 달하는 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설 위기에 처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교수를 포함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박용남(전 역사 경관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공동대표)씨와 김정동(목원대 건축학과) 교수가 지역의 귀중한 자연·문화유산을 지키자는 의견을 모았고, 언론인·법조인·종교인·기업인·시민운동가·일반인 등 약 50여 명의 지역인을 발기인으로 해 1999년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을 결성했다.

김 교수는 “대전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땅 3.3㎡(1평) 사기 운동’을 벌였고, 대전시와 한남대를 상대로 역사적·건축학적으로 소중한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했다”며 “결국 시민의 뜻에 공감한 한남대가 아파트 건설 부지를 매입했고, 오정골 선교사촌은 개발 위기에서 벗어나 오롯이 제모습을 지키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모임은 ‘역사 경관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으로 재구성됐다. 그리고 오정골 선교사촌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 인돈학술원이 대전시기념물로 지정되는데 다시 한 번 힘을 모았다.

건물 세 개 동이 2001년 6월 대전시로부터 문화재(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됐다. 1994년 인돈학술원을 개원한 한남대 역시 당시 선교사들의 생활도구와 각종 서적과 편지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김 교수는 시민이 힘을 모아 역사건축물을 지키는 운동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건물이었던 중앙극장, 대전의 랜드마크였던 옛 한국은행 대전지점(한일은행 대전지점) 등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건물의 가치를 알고 옛 건물을 보존하는 운동을 펴야 한다는 것.

그는 “옛 건물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자 그 자체가 역사가 되는 곳으로 앞으로 꾸준히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사진 신호철 기자 canon@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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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학술원 내부 모습.
인돈학술원 내부 모습.
한남대 인돈학술원에 대해 설명하는 김조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남대 인돈학술원에 대해 설명하는 김조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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