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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정신·문화 없이 '일본은 없다'

2009-08-27기사 편집 2009-08-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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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백제 혼'

①프롤로그-탐사를 시작하며

지난해 6월 충남도를 방문한 아라이 쇼고(荒井 正吾) 일본 나라현(奈良縣) 지사는 고대 백제로부터 시작된 한류(韓流) 열풍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한국의 ‘하찮다’는 말은 일본어로 ‘백제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백제의 문물이 전파된 나라현의 후손으로서 긍지와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아라이 지사가 말한 ‘백제가 없다’는 일본어로 ‘구다라나이(百濟無い)’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최상의 백제 칭송이 현직 일본 지사로부터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 2004년 8월에는 보다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 마사히코(朝香誠彦) 왕자가 백제 25대 무령왕 왕릉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돌아갔다. 고대 백제와 왜의 교류 이후, 일본 왕족의 백제 왕릉 참배는 처음. 아사카노 마사히코 왕자는 일본 왕실에서 직접 가지고 온 고대 일본 왕실의 향(香)을 피우고 제물을 올리며 무령왕의 영전에 머리 숙여 절을 올렸다. 이키히토 일왕이 “내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공언한 지 3년 만이다.

지난 4월에는 백제 제26대 성왕의 제3왕자 임성태자(琳聖太子)의 45대 직계 후손인 오우치 기미오(大內公夫)씨와 다카코(孝子) 부부가 부여 능산리 2호분(백제 성왕의 능으로 추정)에 무릎을 꿇고 “수 많은 세월을 지나 대망의 조상의 땅에 지금 돌아왔습니다”라며 제문을 올렸다. 오우치 가문의 내력과 임성태자의 고대 일본에서의 위상은 무엇일까. 일본의 사학자들은 오우치 가문이 백제 성왕의 임성태자의 직계 후손으로 남북조시대까지 번창했으며 임성태자는 서기 611년 야마구치(山口)현으로 상륙해 이 고장을 장악했다고 전한다. 나라현 지사가 힘주어 말한 ‘구다라나이’와 일본의 백제 왕족 후손들의 내한은 고대 백제와 왜와의 정치·외교적 관계와 문화적 교류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는 신석기시대부터 이뤄졌다. 보다 본격적인 일본으로의 진출은 백제시대 들어서다. 이후 백제가 멸망(660년)한 7세기까지 고대 일본은 백제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고대국가 형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백제로부터 전래된 신기술과 신문화의 수용은 일본 사회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토기와 금공예품의 제작기술, 불교문화의 전파, 백제 장인과 승려의 대거 진출은 고대 일본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광대한 일본 내의 백제계 문화재로 현존한다. 긴끼(近畿)지방의 나라·오사카·시가·교토·효고·와카야마, 규슈(九州)지방의 후쿠오카·구마모토·사가·나가사키·오이타·미야자키·가고시마, 주고쿠(中國)지방의 돗토리·시마네·야마구치현은 물론 시코쿠(四國)지방, 도카이(東海)지방, 간토우(關東)지방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백제계 고분과 사찰, 주거시설 및 다양한 부장유물이 산재해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고대문화와 국보급의 유적, 유물이 백제 교류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고대 일본에서 꽃피운 백제 불교문화인 아스카(飛鳥)문화, 한·일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인 칠지도(七支刀), 일본의 국보인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 백제 제25대 무왕이 왜 왕실로 보내준 구다라관음(百濟觀音), 고대 백제인이 주축이 돼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나라현 동대사(東大寺)의 세계 최대 금동불상 ‘비로자나대불’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본 오사카에는 지금까지 남백제초등학교와 백제역, 백제대교, 백제신사 등 백제의 막대한 영향력을 입증하는 명칭이 남아 있어 이미 1300년 전부터 오사카가 백제의 터전이었음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일본의 언어에는 아직까지 백제어의 흔적이 숨어 있고 일본 황실의 제사의식에도 백제 왕족의 혼이 서려 있다. 일본 속의 백제문화를 들여다 보면, 백제는 더 이상의 패망국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속의 백제문화 발굴과 재조명은 아직까지 시작 단계다. 국내 역사학계보다는 일본에 의해 점진적인 규명이 이뤄지며 실체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게 국내 역사학계의 자성론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다. 일본의 고대 사서인 고사기(古史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바탕을 둔 일본 고대사 연구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편입되며 대한 우월사상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임진왜란 당시의 삼한정벌론(三韓征伐論)이나 근대 일제 침략기의 정한론(征韓論)이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등이 그 예다. 게다가 일본 속의 백제 유적, 유물에 대해선 순수한 자국의 역사·문화적 산물이라든가, 백제가 아닌 중국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충청 정신문화의 본류인 백제정신과 그 문화를 재조명하는 노력이 왕성하다. 백제문화제의 업그레이드, 한·일 백제문화교류사에 대한 공동 학술활동, 백제 고도인 공주와 부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백제 해상 실크로드를 재현하는 한·일 크루즈 운항의 시도, 백제문화재단 설립 구상, 백제문화 콘텐츠 개발, 해외 백제 유물의 반환 추진 등 바야흐로 백제문화 세계화의 대장정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고대 백제사 중에서도 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 교류사가 본격 규명되고 집대성돼야 한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일본 속의 백제 지명과 백제 관련 신사, 사찰 및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에 대한 전면 조사가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백제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문화적 요소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백제에서 일본으로 진출한 인적 자원 및 그 후손들의 행정까지도 추적하는 총체적 접근이 모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백제정신 선양과 백제문화 세계화를 통해 백제문화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곧 문화강국이자 해상왕국, 교류왕국인 백제의 당당한 역사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고 이는 일본 속 백제 역사문화의 발굴과 연구, 재조명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대전일보사가 창간 59주년을 맞아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전개하는 ‘일본 속의 백제 혼’은 백제문화권 언론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일본 내 백제 유물, 유적에 대한 본격 탐사 기획이다. 이번 기획은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 홍윤기 충남도 백제사 정책특보(문학박사·외국어대 교수), 일본 역사학자 등의 자문과 지난 99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소재 백제문화재 조사’를 실시한 국립공주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일본 현지 탐사를 진행한다. 현지 탐사의 성과는 본보에 10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된다.

이용 기자 yong6213@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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