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역사·시대정신 노래하는 詩人의 숙명

이시영의 ‘긴 노래, 짧은 시’(창비, 2009)는 그의 오랜 시력을 결산한 시선집이다. 1969년에 등단하고, 27세에 첫 시집 ‘만월’(1976)을 간행한 후로부터 열한 번째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2007)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시의 주요 작품들이 ‘긴 노래, 짧은 시’에 들어 있다. 시를 고른 사람들은 김정환, 고형렬, 김사인, 하종오인데, 이들 모두 이미 한국시단에서 일가를 이룬 시인들이니, 이시영의 이 시선집에는 그의 작품의 핵심뿐만아니라 한국시의 대표주자들의 심미안이 고루 배어 있을 터이다.

시집의 제목이 ‘긴 노래, 짧은 시’로 되어 있는 것이 그러므로 의미심장하다. 노래는 길고 시는 짧다. 시가 노래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시가 현대의 노래라는 사실은 이제 현대시를 이야기하는 데 정평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쓴다’는 말보다 ‘시를 짓는다’는 말을 더 의미심장하게 사용한다. 시를 짓는다는 말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짓다’라는 말이 환기하는 심미적 행위의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세계의 핵심을 전달하는 사람인데, 그 핵심이 몇 마디 혀의 놀림으로 표현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 거기에는 있다. 세상을 심미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이 세상의 참된 면모를 천의무봉의 솜씨로 구성하고 드러내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쓰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리듬에 실려 그 세상 자체가 되어 세상 스스로 노래하듯이 ‘짓는’ 일이다.

그렇게 세상을 노래해 온 이시영이 오랫동안 ‘창비’의 굴곡진 시간과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한국문학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의 첫 시집이 창비(당시에는 창작과비평)에서 간행되었고, 창비의 주요 문인들이 대거 포진한 1974년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살림꾼 노릇을 한 이가 바로 이시영이다. 그는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수록된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지금 독자들이 보고 있는 ‘창비시선’을 이끌어 온 이가 바로 그이기도 하다. 얼마전 창비시선 300호 기념시집이 나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숨은 공력 탓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이 창비의 운명이었고 창비의 굴곡이 그의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이다.

시력 40년을 이룬 그의 시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경향을 가진 세계는 아니다. 세상이 변해온 만큼이나 그의 시가 가진 형상의 빛과 그림자 또한 변모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세상이 한참 변혁의 목소리로 가파를 때 그의 시는 단아한 단형 서정시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서정시인의 제 갈 길이 표면화된 것일까 아니면 서정시인의 생래적 저항이 시로 간접화된 결과일까?

그의 첫 시집 ‘만월’의 표제작이 보여준 강렬하고도 비극적인 역사의식을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갈등이 이렇게 맞춤하게 형상화 된 시는 다시 찾기 힘든데, 그 구절은 이렇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쭈그리고 앉은/산길에는 썩은 덕석에 내다버린 아이들과 선지피가 자욱했다/어둠속에 숨죽인 갈대덤불을 헤치고/늙은 달이 하나 떠올랐다” 시는 ‘늙은 달’의 하얀 절망으로 현실의 죽음 전체를 감싼다. 아마 한국현대사는 이시영의 ‘만월’을 통해 극적으로 심미화되는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비극적 풍경이 그 이전에 신경림에 의해 리얼한 현실적 언어로 수렴되고, 그 이후에 이성복이나 황지우의 모던한 상상적 언어로 확장되었다면, 이시영은 그 양편의 언어적 거리를 포괄하면서 단아하나 강렬한 언어구성체를 만들어내었다.

그의 시가 80년대 후반, 즉 변혁의 목소리가 높았던 때에 단형서정시의 그윽한 세계로 변모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슬맺힌 노래’(1991)가 그 변모의 총괄체이다. 그러고 보니 그 시집의 제목이 ‘노래’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눈여겨보도록 만든다. 그때 그는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이 시집을 끝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고요한 늪의 세계, 아득한 죽음의 세월로부터 과감히 벗어나고자 한다. 나의 언어여 새로운 무기를 들자.” 그리고 시인은 실제로 변했다. 짧고 아름답지만 애매모호한 분위기로 가득차서 사람들을 몽롱하게 만드는 시들이 있고, 지난 기억의 성채를 되살려서 생생한 삶의 즐거움으로 육화된 시간의 시편들이 있다. 당시 한국시단은 노동시와 혁명시 등등의 과격한 미학적 시도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때 이시영이 보여준 서정시의 세계는 그러므로, 현실적 한계라는 지적을 감수하면서, 시의 본령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 언어적 싸움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시영의 시가 다시 한번 크게 변화하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주간논평’ 2009. 1. 28)와 같은 시 때문이다. 용산철거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적 참사를 형상화한 시인데, 여기에는, 국경선 안의 동포를 국경선 밖의 외적처럼 취급하면서, 테러진압특공대로 그들을 진압하는 국가 권력에 대한 엄중한 항의와 폭로가 있다. 이시영의 시가 역사적 비극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던 시기로부터 개인적 감성의 단형서정시의 시기로 이월했다가 비극적 현실의 세계로 다시 나와야 할만큼, 지금 이 땅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시인은 예민한 감촉을 그의 땅에 늘 드리우고 사는 존재이다. 그의 시가 다시 현실의 비극을 노래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래서 더 슬픈 사실이다.

‘긴 노래, 짧은 시’의 넓은 진폭 속에서 이시영의 이 현실주의적 복귀가 가능했던 근거를 찾아내는 것도 그의 시를 읽는 한 방법이 될 테지만, 선배시인으로서 후배시인들을 바라보는 눈매를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시집이 나왔으니 기념 삼아 그의 시 한 편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수록된 시 모두 명편들이지만, 그의 현재의 위치에 걸맞는 시 한 편이 눈에 띈다. 87면에 실린 ‘애련’이란 제목의 짧은 산문시이다.

“이 밤 깊은 산 어느 골짜구니에선 어둑한 곰이 앞발을 공순히 모두고 앉아 제 새끼의 어리고 부산스런 등을 이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겠다.”

지금 후배 시인들을 보는 이시영의 심사가 이렇지 싶다. 몇 년 전부터 한국시는 새로운 형식실험에 집중한 젊은 시인들의 언어로 인해 소란스러웠다.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에 익숙한 독자들을 난처하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여기에 대해 선배 시인들이 보여준 침묵의 애정은 곧 이시영이 형상화한 ‘어둑한 곰의 이윽한 눈길’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애정어린 눈길이야말로 한국의 모든 시를 ‘짧은 시’에서 ‘긴 노래’로 만드는 공력의 소산일 것이다. 최근에는 그 긴 노래에 합류한 젊은 문인들이 있어 주목된다. 거의 개인적으로 살아왔던 그들이 최근 용산참사현장에서 날마다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시영은 이미 그들의 그 변모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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