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인정많고 여린 분이셨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평민당 총재)이 1990년 그린벨트 재조정을 요구하는 전국 대표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대전 유성리베라 호텔을 방문, 송석찬 전 의원(당시 평민당 유성지구위원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대전일보 DB>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평민당 총재)이 1990년 그린벨트 재조정을 요구하는 전국 대표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대전 유성리베라 호텔을 방문, 송석찬 전 의원(당시 평민당 유성지구위원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대전일보 DB>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서로간의 호칭은 언제나 김 선생님과 송 동지 였습니다”

충청권 민주당의 젊은 기수였고, DJ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인 송석찬(57) 전 국회의원.

송 전 의원과 DJ의 인연은 그의 나이 19세였던 지난 1971년으로 올라간다.

학업을 위해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자취생활을 했던 그는 1969년 3선 개헌의 부당함을 목도한 뒤, 정치인을 꿈꾸며 오늘날의 웅변학원에 다니게 된다. 학원에서 그는 당시 DJ의 측근이었던 김상현 전 국회의원을 만나,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DJ의 청년 기동유세반 연사로 활동한다. 이후 그는 DJ의 낙선과 군 입대, 복학 등으로 일정 기간 현실 정치와 멀어진다.

그러나 DJ와의 질긴 인연은 1985년 미국에서 귀국한 DJ와 재회에서 본격화되고, 그로 하여금 다시 정치를 시작하게 한다.

“참으로 인정 많고 여리신 분이었습니다. DJ께서 가택연금을 당하신 동안 동교동 자택은 한마디로 전쟁터였습니다. 연일 수많은 지인들과 당직자들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던 시절, 그렇게 경찰에게 얻어맞고 동교동 자택으로 들어가면 DJ는 등을 어루만지며, 한없이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6년간 DJ를 보좌했던 그는 91년 민주당의 불모지인 대전에서 초대 시의원에 당선되고, 1995년 민선 1기, 1998년 민선2기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유성구청장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DJ께선 주요 행사마다 제 이름을 거론했고, 회의마다 저를 당신 옆에 앉히려 하셨습니다. 불모지였던 대전·충남에서 유일한 평민당 단체장인 저를 내세워 영남 등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의 불만을 사전에 막으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웃음)

2000년 DJ의 권유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같은 해 헌정 사상 초유의 ‘의원 꿔주기’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17석이었던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동료 의원 2명과 함께 소속 정당을 탈당, 자민련에 입당한 것.

“자민련 입당을 두고 언론에서 엄청난 비난을 했지만, 저와 동료들은 DJ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연말 정부 예산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야당의 반대로 계속 지연됐습니다. 그래서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 국정마비를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순전히 저와 동료들의 충정에서 비롯돼 청와대는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언론에선 의원 꿔주기로 변질 비난했습니다”

DJ의 대선 승리와 노벨상 수상이 생애 가장 기쁜 추억이었다는 송 전 의원은 DJ의 쓸쓸했던 뒷모습을 소개했다.

“92년 DJ께서 대선에 떨어지신 뒤 기자들의 추적을 피해 유성에 도착, 저를 찾았습니다. 밤새 약주를 드신 후 다음 날 대전역에서 DJ 내외분과 헤어지는 데 가슴이 멍했습니다. 국민들이 또다시 부를 것이라고 위로를 드렸는데, DJ께선 오히려 ‘송 동지는 젊으니까, 나라를 위하라’고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돌아서는데 DJ의 어깨가 왜 그리 안타까웠던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DJ와의 일화를 설명하며 인터뷰 내내 눈가를 꾹꾹 눌렀던 송 전 의원의 분위기는 어느새 DJ를 닮아가고 있었다.

또 DJ와의 추억을 생각하는 듯, 가끔씩 입을 닫은 채 한참 동안 허공을 응시했고, 기억의 편린을 끄집어내려 종종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앞으론 이러한 모든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길…”

우세영 기자 sy6262@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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