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박물관, 내달까지´…타임머신´ 특별전

내동리 지석묘는 충남방적이 들어서면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조사가 끝난 후 공장 정문 옆 언덕에 옮겨졌다(사진 위). 다양한 시대의 유적지와 유물이 발견된 대청댐 수몰지내 주산동 발굴현장. 1978년 주산동 고분군내 삼국시대 성곽이 발굴됐다.
내동리 지석묘는 충남방적이 들어서면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조사가 끝난 후 공장 정문 옆 언덕에 옮겨졌다(사진 위). 다양한 시대의 유적지와 유물이 발견된 대청댐 수몰지내 주산동 발굴현장. 1978년 주산동 고분군내 삼국시대 성곽이 발굴됐다.
대전 지역에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1967년.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에서 대부분의 발굴이 이루어지다 1956년 전국적으로 매장문화재에 대한 발굴이 확대된 지 장장 10년이 넘어서의 일이었다.

당시 괴정동의 한 주민이 밭을 갈다가 우연히 심상치 않은 유물을 발견하고 신고해 알려진 괴정동 석곽묘 유적이 대전의 최초 발굴이다. 이곳에서 한국식 동검이 출토된 초기 무덤을 비롯해 거친무늬청동기거울, 방패형동기, 칼자루형 동기 등 각종 청동기가 발견되면서 대전은 순식간에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 이후부터 1990년도까지 대전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활발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1977년 대청댐수몰지구 내에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삼국시대 고분군, 고려와 조선시대 건물지 등 다양한 시대와 성격이 유적이 확인됐고 충남방적공장 부지에서는 총 4기의 내동리 고인돌이 발견돼 많은 학자의 관심을 받았다.

1990년에 이뤄진 보문산성 발굴조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대전에서 개발에 앞서 시행되는 구제발굴(救濟發掘)이 아닌 연구와 보존을 위한 첫 학술발굴(學術發掘)이었고 보문산성 외에도 여러 산성의 존재가 확인돼 대전이 ‘산성의 도시’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대전 지역에서 엑스포 개최와 대규모 택지개발공사 등 굵직굵직한 사업이 추진되면서 발굴조사도 급물살을 탔다.

지난 1991년 발견된 둔산 선사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등 모든 선사시대의 유구가 발굴된 곳으로 학술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둔산 선사유적지 발굴을 신호탄으로 대전 지역 발굴조사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송촌동 유적, 법동 유적, 노은동 구석기 유적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신대동, 비래동, 용산동, 상서동 등 청동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유적이 많이 확인됐고, 계족산성과 더불어 월평동 유적도 삼국시대 대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대전의 발굴 역사는 올해로 42년에 불과하지만 모두 70여 건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대전 역사에 대해 새로운 많은 사실들을 밝혀줬고, 그동안 어렴풋이 짐작만 했었던 역사적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대전의 발전과 역사에 발맞춰 진행됐던 다양한 발굴이야기가 유물과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대전시 출범 60주년을 기념해 대전선사박물관(관장 류용환·museum.daejeon.kr)이 ‘60주년 타임머신전-대전 60년, 발굴이야기’ 특별전시회를 8월 30일까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내동리 고인돌, 대청댐 수몰지구 등 미공개 발굴 사진 등이 처음 공개되며 둔산동 출토 빗살무늬토기, 보문사지 출토 석조불상 등 국립공주박물관을 비롯해 각지에 흩어져 있던 대전의 대표적 유물 8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김기범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땅속에 묻힌 유물·유적을 조사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발굴조사는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자료일 뿐 아니라 지역의 발전과정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며 “이번 전시회는 대전시의 역사와 더불어 시 출범 이후 대전의 발전상을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042(826)2814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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