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를 대표한다. 지구촌 미술관을 대표한다 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두 미술관은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루브르가, 강 건너 남쪽에는 오르세가 마치 경쟁하듯 세계 예술문화 중심도시를 웅변하고 있다.

두 미술관의 건축미도 백미다. 왕궁이었던 루브르는 멋스러움과 예술적 기품이, 그리고 오르세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한 철도 역사 겸 호텔로 대표적 근대 건축물인 셈이다. 두 건축물은 에펠탑, 개선문, 센 강 등과 함께 역사, 문화, 예술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이다. 루브르 , 오르세, 에펠탑, 개선문이란 단어, 사진, 또는 그림을 보면 파리가 연상되고, 파리를 떠올리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쌍방향 자유연상(自由 聯想)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루브르와 오르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장품이다. 루브르는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까지 실로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오르세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작품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했다. 하지만, 두 미술관 소장작품 중 화룡점정(畵龍點睛) 역할을 하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레의 ‘만종’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오르세는 ‘만종’이 있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루브르 박물관 바닥 대리석이 관람객의 발길에 마모됐을 정도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눈을 돌려 대전의 상징물을 찾아보자. 당장 이거다 싶은 게 딱 떠오르지 않는다. 괜히 자신도 모르게 궁색해진다. 1932년 충남 도청 소재지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온 후 고희를 넘겼지만, 역사, 문화, 시대성을 아울러서 대전과 환치관계가 성립되는 상징물이 연상되지 않는다. 결국 ‘글쎄’가 정답이 되고 만다. 이것저것 거론되는 것은 많지만, 통시적으로 상징하는 것을 찾는 데는 역부족이다. 상징물이 되려면 대전의 역사, 문화, 시대성, 정서까지 녹아 있어야 한다. 정체성과 등가물이 돼야 한다.

흔히 과학도시, 대전 엑스포, 한빛탑을 대전의 상징으로 얘기한다. 과학도시는 대전의 이미지면 족하다. 지역정서와 생활문화 면에서 아직도 이질감 괴리감이 있다. 대전을 상징하기에는 부족하다. 한빛탑, 대전 엑스포를 거론하지만, 현재와 단절감이 크다. 20대 이하는 대전 엑스포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대전발 0시 50분의 대전역과 3대 하천도 꼽지만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내세우는 ‘00도시’나 건축물도 있다. 초대형 빌딩인 랜드마크를 건설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거창함으로 포장된 정치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영속성은 물론 지역 정체성을 대변하지도 못한다. 파리에 초고층 건물이 있어서 유명한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대전에 뚜렷한 상징물이나 브랜드가 없는 것은 파리처럼 대형 박물관이 없어서도 아니다. 시민과 지도자, 문화 예술계의 의지가 부족했든지, 아니면 사고가 짧았던 게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역사가 짧은 근대도시 때문이란 자괴감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상징물과 브랜드는 시민이 함께 가꿔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전이 2000년 역사의 파리와 비교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상징 브랜드를 가꿔나가면 안 될 것도 없다. 필요하다면 시민운동이라도 펼쳐야 한다.

문화는 삶의 형식이고 무늬다. 어느 시대든지 문화는 인간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담고 있다. 도시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나 브랜드는 그 도시의 문화이며 역사다. 한마디로 도시의 역사와 스토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상징물이나 브랜드는 그 도시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시민의 구심점이 되고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준다. 무한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으며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무한대의 가치 창출도 가능하다. 정치적 구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원석과 같은 존재다. 그 원석을 캐내 활용하자는 것이다.

대전은 경주나 서울처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역사문화는 부족한 대신 근·현대, 과학이란 이미지와 미래지향적인 테마를 가진 도시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대전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면 되는 일이다. 상징물 가꾸기와 브랜드 가치 창출은 대전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내세울 것이 정 없다면 대전시 승격 60년, 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아 시민 여론수렴을 거쳐 에펠탑 이상의 제대로 된 상징물을 만들 수도 있는 문제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