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한국의 대결적 정치 풍토를 바꾸기 위한 ‘근원적 처방’ 발언은 개헌을 염두에 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 현 대통령 단임제의 폐해는 개헌 범위를 권력구조로까지 확대시킬 것인가.

개헌 논의의 첫 단계인 개헌공론화 가능성 여부가 이달 중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개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각종 개헌 토론회가 7월에 봇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공동대표 이주영·이낙연·이상민 의원) 창립 1주년 기념 ‘역대 국회의장 초청 개헌 좌담회’를 비롯한 개헌 관련 토론회가 국회를 중심으로 잇달아 열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야가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된 제도상의 문제라는 데 생각을 같이하면서 개헌을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 시기가 문제일 뿐 공감대는 오래전부터 저변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실 국회 내 개헌 논의에 대한 공감대는 18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촛불 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개헌연구모임을 발족시켰다. 원내 299명 의원 가운데 186명이나 회원으로 가입돼 있을 정도로 개헌욕구가 크다.

가장 최근에 개헌이 공론화된 것은 2007년 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서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고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대선을 10개월 남짓 앞둔 상태여서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진전되지는 못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헌법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87년 제9차 개헌을 통해 만들어진 헌법이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대통령 직선제라는 큰 성과를 일궈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6·29선언 직후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탓에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권력구조 개편 말고는 시대적 요구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나마 개정한 지도 벌써 22년이 지나 그 수명이 다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들과 학계, 정계의 높은 개헌 공감도와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이제 개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개헌 논의 조기점화에 대한 걸림돌도 적지 않다. 정치권이 개헌이란 큰 틀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개헌의 범위가 정부형태 개편으로 확대될 경우 여야 또는 여권 내부의 이해관계는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크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부터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중심 4년 중임제까지 사안마다 첨예한 논란이 벌어질 것이며, 이는 개헌 논의 조기 점화를 차단할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경제 살리기와 각종 민생법안을 두고 개헌을 논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개헌은 자칫 미디어법 등과 같은 다른 현안을 모두 관심 밖으로 밀어내거나 조기 레임덕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헌방향을 두고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여권 내부의 상황도 개헌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그러나 어떠한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이번에는 꼭 대통령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의 헌정사는 ‘전임 대통령 수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권이 바뀌고 나면 전임 대통령은 물론 그의 친인척까지 예외 없이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됐던 사실을 우리 국민은 똑똑히 지켜봤다. 60년 헌정사에 단 한 명의 성공한 대통령도 없다는 것은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해도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권력과 돈을 동시에 거머쥐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한국식 대통령제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중요한 자리에 자기 사람 심고, 자기 지역에 국가예산을 집중 지원하는 대통령제는 지역주의의 골만 갈수록 깊게 할 뿐이다.

20여 년 만에 어렵게 잡은 개헌 모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타이밍도 잡을 수 있다. 2012년 4월 이전에 개헌을 하면 2012년 5월부터 시작되는 국회의원 임기와 2013년 2월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의 임기가 최소한의 시차로 연결된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18대 국회 전반기인 올해 안에 개헌 논의에 착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 중요한 단계에 놓여 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한진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