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재발견-(18) 둔산 신도시③

2009-06-10기사 편집 2009-06-09 06:00:00

대전일보 > 사회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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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공'20년 명실상부 정주공간 ‘탈바꿈’

첨부사진11960년대 초 둔산동 둔지미 마을(위). 지금의 둔산 갤러리아 백화점 타임월드점 부근이다.

둔산 신도시 2지구에 들어설 아파트단지들이 속속 완공된데 이어 입주계약을 한 주민들의 입주가 러시를 이루며 완료된 것은 1994년 상반기를 전후한 시기였다. 이로써 둔산 신도시 아파트단지들의 완공 및 입주가 거의 마무리됐다.(둔산 신도시 마지막 아파트단지는 1998년 정부대전청사 공무원들을 위한 샘머리아파트이다) 이때 둔산 신도시의 형태가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연히 예전에 있던 공군교육사령부나 향토사단, 논밭의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게 됐다. 말 그대로 드넓은 지역에 대부분 농사를 짓던 불과 몇 백 가구만이 살던 풍경은 모두 사라져버린,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총면적 743만4838㎡에 둔산·탄방·월평·만년동 등지에 걸쳐 있는 둔산 신도시 아파트단지들은 중앙부에 있는 대전시청 청사 및 대전지방법원과 대전지방검찰청 청사, 대전시교육청 청사 등 행정기관 건물과 수많은 상업용 빌딩들을 에워싸고 그 바깥 부분에 빙 둘러 늘어서 있는 말발굽 형태의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동쪽에 있는 유성구 도룡동 대전엑스포과학공원과 만년동 문화예술의전당, 대전시립미술관 등을 바라보면서 둔산 신도시의 서·남·북 세 방향에 걸쳐 U자 형태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의 아파트단지에서는 빈집이 거의 없이 새로운 생활터전을 찾아 온 주민들로 활기를 띠게 됐다. 이 지역 아파트에만 25만에 가까운 주민들이 사는, 말 그대로 신도시가 된 것이다.

둔산 신도시 2지구 역시 상당한 면적이 공군교육사령부와 향토사단인 육군 32사단 사령부가 차지하고 있어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접근이 차단된 곳이었지만 모두 그런 곳은 아니었다. 당시 2차선 도로였던 현재의 계룡로와 만년교 인근, 현재의 월평1동에는 딸기밭과 각종 채소밭, 논이 혼재돼 있었다. 매년 초여름에는 딸기를 사러온 대전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겨울에는 논에 물을 담아 자연적으로 얼게 한 다음 썰매와 스케이트를 지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거의 없던 이곳에는 해태주조의 포도주공장이 있었다. 1960년대 세워진 이 공장은 원래 일본 자본인 산토리가 대전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포도를 원료로 해 포도주를 생산하는 주류 제조공장이었다. 이후 해태주조가 인수해 공장을 가동했으나 국내 포도주 시장이 확대되지 않는 바람에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둔산 신도시 개발과 함께 헐리고 말았다. 갑천에 접해 있는 이곳은 원래 지대가 낮은 곳이어서 둔산 개발에 막 시동이 걸린 때에는 인근 매봉에 세워진 월평정수장 공사에서 남은 흙을 연일 대형 덤프트럭으로 운반해 지반을 메우고 돋워 지표를 높였다. 공군교육사령부 안에 있던 구릉과 낮은 산들을 일제히 밀어버린 둔산동 지역과는 대조적인 과정을 거친 셈이다.

둔산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공군교육사령부 등 군부대 안에 크고 작은 숲이 형성돼 있던 낮은 구릉과 언덕을 불도저와 굴삭기 등으로 모두 밀어버려 평평한 평지를 만든 뒤 아파트를 세운 것은 이후 두고두고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둔산 신도시 내 각 아파트단지와 공원 안에 심은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제법 울창한 숲의 모습을 띠게 됐지만, 입주 초기 심은 나무들이 거의 묘목 수준이었고 키가 큰 나무는 거의 없어서 삭막하고 황량한 분위기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개발 주체인 한국토지공사로서는 구릉과 낮은 산을 모두 밀어버린 후 지반을 다진 평지에 아파트들을 착착 세우는 것은 공기 단축과 효율성 측면에서 최선의 방법이었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개발·건축을 완료하고 개발 이익금을 조속히 환수하는 것이 당시 건설업계의 지상과제였다. 이 같은 태도에 대한 비판은 나중에 건설될 유성 노은 신도시에 반영돼, 노은 신도시는 자연적인 구릉과 숲이 상당히 보전되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건설회사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또 있었다. 현재의 월평2동 대덕대로 공사 중 선사유적지가 발견된 것이다. 충남대 박물관이 지표조사 중 발견한 이 선사유적지에서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민무늬 토기, 돌도끼, 석검 손잡이 등이 발굴됐다. 발굴 당시 이 유적지 표고는 61.8m로, 현재 인근에 세워진 스타게이트 빌딩 높이만큼이나 됐다. 이 유적지 넓이는 현재 곧게 뻗은 대덕대로 예정지까지 차지하는 등 상당히 넓었다고 당시 발굴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즘도 그렇듯 이 같은 유물유적이 발견되자 개발계획을 변경해서라도 이를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유적지가 파손되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개발을 계속할 것인지를 놓고 격렬한 논란이 일었다. 유적지를 무시하고 공사를 계속하자는 쪽에서는 교통이 불편한 대덕연구단지에 넓은 진입로를 제공해야 하고, 촉박한 ‘대전엑스포93’ 일정을 근거로 들이댔다. 1년간 팽팽한 대립 끝에 결국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보존하되 현재의 크기와 높이로 유적지를 줄이고 위치도 약간 옮겨, 8차로나 되는 대덕대로가 굽은 커브 길로 바뀌는 것을 막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덕대로는 원래 계획대로 곧은 도로로 건설되게 됐지만 공기가 1년 늦춰졌다.

대전시의 한 관계자는 “당시 유적지 보존에 대한 찬반 양론이 매우 격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선사유적지를 발견된 위치 그대로 보존키로 했더라면 드넓은 대덕대로가 갑자기 꺾이는, 커브 길로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월평2동에 있는 이 선사유적지가 둔산동 선사유적지로 불리는 것은 발견 당시 행정구역이 둔산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둔산 신도시 개발은 마무리돼 가는 중이다. 물론 지금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개발이 안 된 공한지가 남아 있는 곳은 있다. 둔산 신도시 상업구역에 들어선 오피스빌딩에 각종 기업체, 상가들이 입주하고 대형종합병원, 문화예술공간이 세워졌는가 하면 각급 학교들이 문을 열고 운영됨으로써 둔산 신도시에 직장이 있는 시민들에게는 주거와 직장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것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먼지 날리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신도시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명실상부한 정주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글 류용규·사진 빈운용 기자 realist@daejonilbo.com

<자료사진=대전일보 DB·대전서구문화원·오진수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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