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구슬땀 흘리며 충절 기려

지난 30일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소재 이충무공 위토에서 시민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위토 모내기 행사를 가졌다.
지난 30일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소재 이충무공 위토에서 시민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위토 모내기 행사를 가졌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지난달 30일 아산시 음봉면 충무공 이순신장군 묘소 인근에 위치한 위토(位土)에서 전통 모내기 체험행사를 가졌다.

위토는 문중의 제사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마련된 토지로 이날 위토 모내기 체험행사에는 외국인을 포함, 시민 100여명이 참여해 이충무공의 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겼다.

충무공의 제사와 묘지관리 비용을 충당해오던 위토와 이충무공 묘소는 1931년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넘겨지기 직전 국민의 성금으로 되찾은 곳이다.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이충무공 13대 종손 이종옥의 가산이 쇠진되자 일본인에 넘어갈 처지에 이르렀다.

충무공 종손가의 살림이 점점 영세해지면서 1300원의 빚을 지게 됐고 그 이자까지 총 2100원에 이르게 됐다.

1930년 9월 채권자였던 동일은행은 여러 번 빚 갚을 것을 독촉하고 그 해 5월 말일까지 갚지 않으면 위토 60두락(斗落)을 경매에 처분하겠다고 나선 것.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의해 국민에 알려지면서 1931년 5월 26일 충무공유적보존회가 결성됐고 전국 각지에서 2만 여명이 모금운동에 참여해 1만6021원의 성금이 모아졌다. 윤치호(위원장)를 포함해 남궁억, 한용운, 정인보 등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충무공유적보존회는 성금으로 종손가의 채무 청상과 함께 현충사를 중건하고 위토를 추가 매입했다.

최근 또다시 이충무공 고택부지 등이 법원경매 끝에 종손가 소유에서 덕수이씨 풍암공파 종회로 소유권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현충사 관리소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성금으로 충무공 묘소와 위토를 되찾은 계기가 된 국민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겨 보기 위해 전통모내기 체험행사를 개최했다”고 “국민과 함께 모내기 체험을 하면서 충무공 정신을 기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말했다. <아산=이찬선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찬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