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산문화원 학술대회…역사적 의미 재조명·문화 콘텐츠 활용 논의

백제의 계백장군 투혼과 5000결사대 충혼이 서려있는 황산벌 전투 장면이 지난해 백제문화제 기간 중 논산시 논산천 둔치에서 생동감 있게 재현돼 관람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대전일보 자료사진>
백제의 계백장군 투혼과 5000결사대 충혼이 서려있는 황산벌 전투 장면이 지난해 백제문화제 기간 중 논산시 논산천 둔치에서 생동감 있게 재현돼 관람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대전일보 자료사진>
황산벌 전투가 성곽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평야에서 이루어졌고, 백제가 자연 지형을 적절히 이용해 진을 쳐 싸웠기 때문에 신라가 전투에 애를 먹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백제는 신라의 작전을 미리 예측하고 자연지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진영을 구축했지만, 결국 보병 대 보병으로 싸우면서 숫자상으로 열세였던 백제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황산벌 전투 조명 학술대회가 29일 논산시청 3층 회의실에서 정경일 건양대 문학영상학과 교수의 사회로 열린 가운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서정석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를 비롯해 이문기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전낙운 육군훈련소 연구관 등 관련 전문가가 주제발표를 갖고, 류제협 논산문화원 이사 및 정재윤 공주대 사학과 교수 등이 토론을 벌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계전문가들의 토론을 바탕으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이를 오는 10월 열리는 제55회 백제문화제의 황산벌 전투 재현 행사에 문화 콘텐츠의 원형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의자왕의 전략과 황산벌 전투’라는 주제로 발표한 서정석 교수는 “황산벌의 위치가 종래 알려졌던 것보다 북쪽으로 올라간 논산 연산면 연산리 일대라고 추측된다”며 “또 당시 백제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신라군의 진격을 저지했어야 했기 때문에 산성을 근거로 방어전을 펴기보다 험지에서 진을 치고 싸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낙운 육군훈련소 연구관은 ‘황산벌 전투의 경과’ 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몇 차례 답사한 결과 백제 계백 장군이 뒤늦게 황산벌에 합류했다고 하더라도 ‘돌로 바위를 치듯’ 무모하게 승부를 걸지 않게 지방군이나 동원된 지역주민이 구축한 견고한 진영에서 버텼을 것”이라며 “또 그 당시에 적합한 국가관으로 무장한 계백, 관창, 반굴로 상징되는 지도층이 국가사회적 책무와 희생을 바탕으로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무장한 건강한 사회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교훈은 이 시대 후손들이 본받아야 할 변함없는 진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그런 의미에서 1349년전 이 땅의 조상이 국가의 운명을 걸고 싸웠던 ‘황산벌 혈투’를 오늘날에 적합한 의미구현 없이 즐거운 축제의 한마당으로만 볼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해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응진 논산문화원장은 “이번 학술세미나는 당시 백제군의 기상이나 황산벌 전투의 전술적, 지리적인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지난해 백제문화제 당시 선보였던 황산벌 전투보다 더 볼거리가 많고 조상의 위상과 지혜를 알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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