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가 사용한 국새 공개 따른 문서 내용 관심

독일황제에게 보낸 친서의 초고본과 발송본
독일황제에게 보낸 친서의 초고본과 발송본
고종황제가 실제로 사용했던 국새가 공개됨에 따라 국새가 찍힌 문서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문서가 아닌 외교를 위한 친서에 주로 사용된 점, 의례용으로 만든 어보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점, 또 대한제국 선포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에 언급한 국새 13과에 포함돼 있지 않은 점 등을 미루어봤을 때 이번 국새는 비밀리에 제작돼 고종황제가 직접 소지하고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기사 본보 18일자 1, 5면 보도>

또 원래 국새는 상서원(尙書院)에서 관리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황제가 이 국새를 직접 소지하고 관리한 점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을 나타낸다.

고종은 1903년(광무 7년) 11월 23일 이탈리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극동 만주지역에서 러·일 전쟁이 일어나려는 기운이 감돌고 있다’며 긴박함을 강조했다.

고종은 또 친서에 “지역적으로 일-러 사이에 있어서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는 전쟁지역 내에 있게 되고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며 “만약 민족 문제에 있어 결렬된다면 심히 원컨대 우리는 전적으로 중립에 힘쓸 것”이라고 호소했다.

고종이 독일황제에게 보낸 친서 역시 일본의 폭력을 호소하면서 독립을 보장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1906년인 광무 10년, 서명과 이번에 발견된 국새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고종은 또 1904년 러시아, 1906년 영국까지 고종은 무려 10여 개국에 친서를 보내 조선의 주권회복을 절박하게 주장했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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