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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순간에 길 물어볼 곳 없는 한국

2009-03-12기사 편집 2009-03-1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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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IMF 금융위기 때 우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그때보다 더 힘들다는 지금은 ‘엄마’를 생각하며 가슴을 적시고 있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이 땅의 아버지들은 예고 없이 찾아든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설 자리를 잃은 처량한 신세였다. 그때의 아버지는 한없는 위로와 연민의 대상이었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가족 몰래 마지막을 준비하는 내용을 그린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200만부 이상 팔리는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다.

‘눈물의 비디오’도 있었다.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해서 그렇게 붙여진 영상물은 1998년 봄 IMF 구조조정 여파로 명예퇴직을 당한 서울의 한 은행지점 차장이자 40대 아버지의 하루 일상을 담은 것이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2000년에는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가 아버지의 열풍을 이어갔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이혼 후 힘든 나날을 보내던 아버지가 간암에 걸리면서 애끓는 부성애를 보여준 작품이다.

경제위기는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아버지들마저 따뜻한 부성을 가진 존재로 점차 변모시켰다. 기죽은 아버지들을 일으켜 세우면 가정도, 사회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미 IMF 구제금융이라는 예행연습까지 혹독하게 실시했건만 또다시 경제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경기불황의 찬바람이 매서운 요즘 우리 사회는 아버지 대신 ‘엄마 신드롬’이 거세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엄마 돌풍은 점점 더 강력해질 태세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연극 ‘엄마와 2박3일’, 영화 ‘마더’ 등 전 장르에서 엄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IMF 금융위기 때 고개 숙인 아버지를 위로하는 흐름과 너무나 닮았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등장한 모성신드롬에 대해 심리학자나 평론가 등은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의 불안함’과 ‘보살펴 달라는 호소’가 함께 스며있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결 방안이 어느 정도 분명했던 IMF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위기는 원인과 대책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강인한 생명력’ 또는 ‘흔들리지 않는 모성’에 기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에서는 독일 베네딕트 수도원의 안젤름 그륀 신부를 비롯한 저명한 수도사들의 가르침을 담은 서적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올바른 삶, 진정한 삶, 의미 있는 삶 등 영혼을 치유하는 메시지가 담긴 이들의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최근의 금융위기와 불안한 사회분위기로 인한 현대인들의 무언가 새로운 대안을 갈망하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삶의 목표조차 없이 우왕좌왕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내면의 성찰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기위해서라는 것이다.

심각한 금융위기에 사람들은 왜 경제전문가가 아닌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수도사에게 길을 물을까.

그것은 경제에서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불변의 진리처럼 주장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주의 등 거대 담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할 정도로 지금은 엄청난 혼돈과 변화를 겪고 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80년 만에 세계가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 시대를 맞았다. 혹자는 지금의 상황을 중세에서 근대로 바뀐 시기와 비교할 만큼 큰 변혁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적 사건 속에 연루되어 있지만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몰라 그저 불안에 떨고만 있다. 엄마나 아버지는 마음의 안식처일 뿐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는 아니다. 결국 국가의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치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웅은 고사하고 변변한 지도자조차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수도사에게 길을 묻는 독일인들이 어찌 보면 현명한지 모르겠다.<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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