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한 현실 얽매여선 안돼…늘 소리와 함께 사는게 꿈”

지난해 두 명의 대전시무형문화재가 새롭게 지정됐다. 판소리 고법 이수자인 박근영(대전시무형문화재 제17호) 씨와 가야금을 제작하는 악기장 표태선(대전시무형문화재 제18호)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로써 대전시무형문화재는 18개 분야 17명의 보유자가 등록됐다. 우리 지역의 옛 문화의 전통을 이어갈 두 사람을 만나봤다.

판소리를 열창하는 명창 옆에서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을 우리는 ‘고수’라고 부른다. 고수가 연주하는 ‘판소리 고법’은 판소리와 비교해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관념을 탈피하고자 ‘송원장단연구회’를 만들어 판소리 고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전국적으로 판소리 고법을 전수하는 명고가 있다. 판소리 고법의 보유자로 대전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유명한 대전시무형문화재 제17호 박근영(51·사진) 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아버지(고(故) 송원 박우용)로부터 물려받는 판소리 고법으로 전수자를 양성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은 게 북소리, 판소리였어요. 아버지께서 제가 음악 하는 걸 반대하셔서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듣고 장단을 배우고 손놀림을 익혔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포항제철에 입사했지만 역시 피는 속일 수는 없더라고요.”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회사에서 그는 망치를 뺀 자루로 채를 만들어 북을 치는 등 물려받은 끼를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주체못할 끼보다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하셨던 음악은 지극히 음악경험론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못했어요. ‘이렇게 하다간 송원 박우용의 판소리 고법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제가 뛰어들게 된 거죠.”

어렵사리 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나서부터 그의 고생이 시작됐다. ‘판소리 고법을 시작하려면 부모, 처자식 그리고 친구를 버려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2년 동안을 꼬박 북에 매달렸다. 두 발을 뻗고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잠자고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연습에 몰두했다. 수십 개의 북이 망가졌고, 북을 치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박 씨는 “누가 시켰으면 절대 못했을 일”이라며 “말 그대로 ‘환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고, 연주가 차츰 경지에 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북과 함께 생활한 지 10년이 채 안 된 1992년, 그는 가장 권위가 있다는 전주전국고수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다. 판소리 고법으로는 대회 최초였다.

“그 후로 몇 차례 수상도 하고 전국으로 공연도 많이 다녔죠. 음악을 시작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지켜오는 원칙이 있어요. 물질을 좇아 음악이 탁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 늘 음악과 함께 음악인으로서 살자는 것이지요.”

그는 북을 제대로 치기 위해 판소리 ‘적벽가’를 이수하는 등 소리 공부를 했고, 영남대 한국학과 박사과정 논문을 쓰면서 판소리 고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 판소리 고법을 연주하는 순간, 이것이 ‘대전 판소리 고법’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도록 전국으로 공연하러 다니고 있다.

“지난해 대전시무형문화재가 되면서 전수자를 대전 지역으로 국한하더라고요. 하지만 전국의 재능있는 사람에게 나의 판소리 고법을 전수한다면, 그것이 대전을 위하는 거라고 봐요. 더 멀리 내다보면서 판소리 고법을 전수하고 싶어요.” <글·사진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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