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당 대표감 그렇게 없나 ‘박근혜다움’을 지켜주자

국무장관에 힐러리 클린턴, 국방장관은 로버트 게이츠 현 장관 유임!

1일 발표한 버락 오바마 미 차기 행정부 조각은 파격이다. 극적인 면이 교차하면서 짜릿한 전율과 감흥이 느껴진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혈투’를 벌였던 정적을 끌어안고, 색깔이 다른 부시 정부의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정치를 아름답게 승화시킨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젊은 오바마의 자신감 넘치는 협력정치의 품새가 아주 잘 그린 채색화처럼 감동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오바마가 대통령 당선 수락연설에서 밝힌 “젊은이, 늙은이, 빈자, 부자, 흑인, 백인, 라틴계 미국인, 동양인, 아메리카 인디언, 동성애자 등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색이 아닌 ‘통일된 미국’”을 실천하는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정적과 손을 잡는 큰 정치에 미국인들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 속에 변화와 희망의 그림자가 오버랩된다.

같은 잣대를 가지고 국내 정치로 눈을 돌려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서 귀국하자마자 확대 비서관 회의에서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일일이 거명을 하면서 “안보는 왜 안 챙기느냐, 결과가 안 나타나느냐”며 호된 질책을 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하면서도 80년대 인기 코미디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치권은 또 어떤가. 회기 내 예산안 처리는 이미 물 건너갔고 여야가 핏대 높이기 경쟁을 하는 꼴이 가관이다. 여당은 親李, 親朴으로 분열돼 자중지란이다. 172석의 거대여당이지만 사분오열돼 ‘모래알 정당’이란 이미지를 못 벗고 있다.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마다 시원치가 않다. 여당에 국민을 하나로 묶을 희망의 리더가 없다 보니 우왕좌왕하다 헛심만 뺀다. 민주당도 민주연대를 출범시켜 편 가르기를 시작할 모양이다. 통합의 정치, 화합의 리더십은 여야 어디에도 없다. 하는 짓이 금융위기 타개와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 등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난국의 상황논리와 맞물려 ‘박근혜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민화합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빌려 여당이 고민 끝에 내 놓은 카드다. D-공포(deflation)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동력으로서 박 전 대표가 총리든 당대표든 맡아서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는 주문이다. 촛불 정국 때는 ‘총리론’이,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대북특사론’도 나왔다.

하지만, ‘박근혜 역할론’은 이전의 양상과 다르다.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니라 구체성을 띠고 있다. 여당 지도부가 적극성을 보이고 전직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서면서 실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묵묵부답이지만 다음 개각 때 친박 기용설까지 거론된다. 박 전 대표에게 꼬일 대로 꼬인 정국 돌파의 확실한 지렛대가 돼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딱 들어맞는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정치문화와 미국과는 태생이 다르다. 죽고 죽여야 했던 사화와 보복으로 점철된 당쟁의 역사가 가로막고 있다. 정적에 인색한 뿌리 깊은 문화가 내재해 있다. 당장 걷어낼 수 있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병이 다르면 처방도 다르듯 해법도 달라야 한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기용했으니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는 정국타개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정적을 포용하지 못하는 이 대통령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오바마가 되라는 식은 지나친 요구다.

힐러리와 박근혜의 길이 같아야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박 전 대표는 구원투수로 소비할 지도자는 결코 아닌것 같다. 다음 경기를 위해 아껴둬야 할 제1 선발 투수다. 스스로 나서서 역할을 하기 전에는 ‘박근혜의 길’을 가도록 가만히 놓아두는 것은 어떨까. 박 전 대표의 의중과 관계없이 한나라당에서 역할론이 자꾸 불거지는 것은 또 다른 분열과 정쟁을 자초하는 것이다. 역할론은 어린 동생이 누나한테 보채듯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박근혜다움’을 지켜주는 것도 4년 후를 위해 결코 손해를 보는 투자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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