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비친 아름다움이 빛을 발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그늘은 더욱 큰가 보다. 20년간 최정상을 누린 탤런트 최진실의 자살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부족할 게 없어 보였던 그에게도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고 이승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허물이 있었던가.

최진실.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최고 인기를 구가한 몇 안 되는 스타 중의 스타다. 데뷔전 살아온 과정이 불우했기에 시청자들은 그의 오뚝이 같은 성공과정을 지켜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깜짝 스타로 주목받아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년) 등에서 청량음료와 같은 연기를 펼쳤고 최수종과 함께 열연한 드라마 ‘질투’(1992년)의 마지막 신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는 TV 광고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가전제품 CF에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로 장안에 화제가 됐다.

1991년 대종상, 춘사영화제,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싹쓸이했고 대종상 여우주연상(1995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1991년, 1995년, 1997년), MBC 연기대상 대상(1997년), 한국방송대상 여자탤런트상(1998년) 등 기록에 남을 상을 받았다.

인기만큼이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1994년 최진실의 전 매니저였던 배병수 씨가 살해되는 사건이 터져 연예계에 충격을 줬다. 2000년에는 프로야구 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으로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파경을 맞아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진실은 그러나 2005년 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계속된 연기변신을 통해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는 등 물오른 중년의 연기력을 앞세워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난 1월에는 법원에 성본변경허가 신청을 내 7살 아들과 5살 딸의 성과 본을 자신의 것으로 고쳐 강인한 ‘싱글맘’의 투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발랄하고 청순한 이미지에서 악착같은 아줌마로 변신하면서 어떠한 난관도 거뜬하게 헤쳐나갈 것 같은 ‘철의 여인’ 최진실도 세상사람에게 허무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떴다. 세상은 최진실이 영원히 시대와 함께 하는 연인 같은 연예인으로 남길 바랐지만 정작 그는 스타이기 이전에 모진 세파에 상처를 받고 지쳐 쓰러질 수 있는 가녀린 인간이었던 것이다.

연예계 스타는 공인은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적인 인물이나 다름없다. 최진실의 상실이 무엇보다 슬프지만 최근 잇따르는 자살사건이 이로 인해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형규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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