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앞발 발톱을 멧돼지의 목덜미에 걸어놓고 잡아당기면서 목줄이나 목덜미를 찢어버리려던 범이 위쪽에서 짓누르는 멧돼지의 중압에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바윗덩이 같은 대륙 멧돼지였다.

접근전이 장기전이 되자 싸움은 점점 범에게 불리해졌다. 본디 육식동물은 순발력이 있었으나 초식동물에게는 뚝심이 있었다. 뒷다리에서 흘러내리는 다량의 출혈도 범의 힘을 빼내고 있었다.

그때쯤에는 산기슭에 있는 마을에서도 범과 멧돼지의 싸움을 알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나무꾼들의 비명도 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러나 나설 수가 없었다. 범과 멧돼지가 싸우고 있는 싸움판에 어떻게 나서겠는가. 마을 장정들은 노약자들을 모두 아랫마을에 피난시켜 놓고 범과 멧돼지가 싸우는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100관이나 되는 거대한 몸들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도 들렸다.

“나서지 마라. 나무꾼들은 나무 위에 피신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아.”

마을 장로가 말했다.

“우리는 나서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돼. 어느 놈이 죽든 한쪽이 죽일 거야.”

공포 속에서도 여유가 생겼다. 어느 쪽이 죽든 그 시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 싸움에서 범이 죽는다면 그건 일확천금이 된다. 범 껍질은 마을의 큰 재산이 된다.

나무 위에서 범과 멧돼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나무꾼에게도 이젠 여유가 생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범이나 멧돼지는 모두 나무에는 올라오지 못하는 짐승들이었다. 나무꾼들도 이젠 멧돼지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멧돼지는 계속 범을 밑에 깔고 짓누르고 있었다. 멧돼지도 범의 이빨과 발톱에 의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힘이 빠진 범은 더 이상 그런 접근전을 할 수 없었다. 범은 그 접근전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멧돼지는 마치 누르기를 하는 유도 선수처럼 범을 놓아주지 않았다.

마침내 힘이 빠진 범이 멧돼지의 양쪽 목덜미에 찍어 넣고 있던 발톱을 뺐다. 그리고 얼른 몸을 돌려 밑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멧돼지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멧돼지가 먼저 몸을 돌렸다. 범의 발톱에 걸려 있던 대가리가 범의 아랫배를 찔렀다. 그리고 100관의 몸무게를 실은 엄니가 범의 아랫배를 찔렀다.

범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통곡소리 같은 울음소리였다. 크게 찢긴 아랫배에서 피가 분출하고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멧돼지가 이겼어. 범이 죽었어.”

나무 위의 나무꾼들이 소리를 질렀다. 마을에서도 환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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