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관광객에 둘러싸인 찬란한 로마의 중심지

고대 로마의 성터, 50.0cm X 30.0cm,  수묵지본담채
고대 로마의 성터, 50.0cm X 30.0cm, 수묵지본담채
고대 로마의 정치, 사법, 상업, 종교 등 모든 활동의 중심지였던 ‘포로로마노’가 아직도 로마의 중심지에서 당당한 고대 로마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포로로마노는 1394년 대지진으로 붕괴된 후 붕괴 현장에서 건축자재를 채취함으로써 대규모 유적 파괴가 이루어졌다.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감탄사 속에 아직도 고대 로마의 진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포로로마노에는 원로원 의사당과 신전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일상시설 등이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콜로세움, 서쪽으로 테베레강, 남쪽으로 팔라티노 언덕, 북쪽으로 캄피도리오 언덕이 위치해 있다.

포로로마노로 들어서면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설계로 세워졌다는‘비너스와 로마신전’이 있고, 그 곁에는 81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그의 형 티투스와 아버지가 유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티투스의 아치가 있다. 현존하는 로마의 개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포로로마노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은 AD 4세기 전반 막센티우스황제 시대에 콘스탄티누스에 의하여 완성된 ‘바실리카’이다. 가로 길이가 100m에 이르고, 높이 35m, 세로 65m인 이 건물은 당시에 재판소로 사용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그리스도교 보호령이 내려지자 성당 건축을 서둘러야했던 당시의 건축가들에게 유럽 성당건축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이 건축물은 돌 벽체로 둘러싸여있고, 나무로 짠 지붕을 가설한 직사각형의 건물이며, 정면 입구와 마주보는 안쪽의 벽체는 반 돔을 얹었고, 중앙에는 제단을 설치하였다.

포로로마노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건물은 불의 신을 모시던 ‘베스타 신전’이며 신성한 불은 베스탈이라 불리던 6인의 무녀들에 의하여 지켜졌다. 베스탈의 집 역시 초기에는 3층 건물에 방이 50개나 되는 거대한 규모였다. 신성한 불을 지키던 베스탈들은 6-10세 되는 귀족의 딸 중에서 선정되었으며 30년간 베스탈의 직무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만약 불씨를 꺼트리면 가혹 하리만큼 큰 벌을 받았으며, 특히 베스탈들이 그들의 신성한 처녀성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생매장을 당하는 중형에 처해졌다.

고대 로마의 입법 자문기관 역할을 했던 벽돌로 된 4층 건물, 원로원이 높은 언덕위에 서있다. 물론 소실된 것을 재건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이곳이 카이사르(시저·Caesar Gaius Julius·B.C 100-B.C44)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며 죽어간 곳이 아닌가?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에 원로원에서 최후를 마친 군인이며 정치가였던 카이사르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갈리아 지방장관을 지내면서 라인강 연안의 갈리아영토를 평정하였고, 헬베티아족을 토벌하였으며, 게르만인 아리오비스투스를 무찔렀고, 이집트 왕위계승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도 하였다. 그 결과 클레오파트라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케사리온도 낳았다. 그는 B.C 47년에 소아시아의 젤라에서 미트리다테스대왕의 아들 파르나케스를 격파함으로써 소아시아의 패권을 잡았고, 원로원에 보낸 보고서에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 그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모든 군대가 무장을 해제해야 하는 규정을 어겼을 때 규정을 진언하는 부하에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카이사르는 그에게 강력한 실권이 집중되면서 왕위에 오르려는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되어 원로원 공화파 부루투스, 카시우스등에 의하여 최후를 맞게 된다. 장군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지장이었으며, 정치가로서 민심을 정확하게 알고 과감하게 제도를 개혁하는 혁명가인 그가 한편으로는 웅변가요 문인으로서 ‘갈리아전기 8’과 ‘내란기 3권’을 써서 라틴문학의 대표작으로 남기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죽음을 지켜본 원로원은 말이 없고, 그의 시신을 불태웠던 화장터마저도 아무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해 카이사르등 황제들의 신전 기둥들이 외롭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지나간 2000년의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 곁에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의 묘가 쓸쓸하기만 하다. 묘 앞에 서있는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이 당당하게 보인다. 높이 23m, 폭 25m의 개선문은 세베루스 황제의 승전 기념물로 203년에 세워진 것이다.

포로로마노를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성모마리아 성당의 현관에 있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모두가 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청순하고 귀엽게 나왔던 주인공 앤이 된 기분이다. 거짓말을 한 사람의 손을 꽉 물어버린다는 조의 거짓말에 신분을 속인 앤이 움찔 놀라면서 손을 빼 치마 뒤로 감추던 장면이 생각난다.

진실의 입은 강의 신 홀로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원형의 대리석 상으로 본래는 하수구의 뚜껑이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넣으면 손이 빠지지 않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과거 악덕 영주들이 자기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벌하기 위하여 그들의 손을 넣어 신의 심판으로 거짓과 진실을 심판하는 것같이 꾸미고, 뒤에서는 손을 잘라버리는 흉측한 음모를 자행하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진실 된 모습으로 이 세상 곳곳에서 진실 되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를 기대하며 포로로마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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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감탄사 속에 아직도 고대 로마의 진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감탄사 속에 아직도 고대 로마의 진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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