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구성원들의 사표(師表)가 된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그렇게 인정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언행을 따라 배운다. 사표는 학교를 비롯해서 가정, 기업, 종교 등 각종 조직의 바람직한 리더십에 해당하는 가치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문자 그대로 학생들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사표라는 말에는 지식적인 것보다 도덕적인 면에서 의미가 더 크다. 교사들에게 지식 전수는 물론 덕성교육의 기능이 중요시되는 까닭이다.

가정의 리더십인 부모가 자식들의 사표가 되지 못하면 그 가정의 행복지수는 물어보나마나다. 기업의 리더십이 사표가 되지 못하면 그 기업은 무너지거나 존재해도 반사회적 기업이기 쉽다. 종교는 더할 나위 없다. 적어도 그 많은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굳이 종교지도자가 되겠다고 투신한 사람들은 적어도 이기적인 데와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예수가 보여 주었듯이, 부처가 보여 주었듯이 그 성현들이 간 길을 따라가겠다고 시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이어야 한다.

지도자라고 하면 우리에겐 정치인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본래 정치인은 백성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이다. 봉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들은 말로 정치하고 말로 봉사한다. 언론 보도에서 접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이익을 위해 발버둥치는 도박꾼들 같다. 국민들은 그 말에 현혹되어 그들에게 세금을 바친다. 한 번쯤 속았으면 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저번보다 더 현란한 말솜씨에 순진한 국민들은 또 넘어가고 만다.

정치인들은 그런 국민들의 순진함을 알기 때문에 때가 되면 실천 못한 저번의 말씀을 또 과대포장하여 쏟아낸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정치지도자인 줄 착각한다. 지도자가 되려면 품위 있는 말과 희생적인 행동으로 구성원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 사표가 되는 정치지도자들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도산 안창호나 백범 김구의 후계자들은 다 어디 숨어 있는 것일까?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던져 봉사하겠다는 정치인들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기자들이 늘 마이크를 들이댄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공·사석을 막론하고 늘 언론에 공개된다. 꾀가 많은 그들은 그럴 줄 알고 모르는 척하고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할 말 다한다. 스스로의 모자란 것은 전혀 되돌아보는 태도 없이 남의 티끌만 찾아내며 두드려댄다. 어느 대통령은 공석에서조차 성깔대로 할 말을 다하는 바람에 점잖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하였다. 알 것 다 아는 성인들은 그래도 그 저의를 눈치 챈다. 그러나 아직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모두가 헷갈릴 뿐이다. 자기들이 하는 막말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양보나 배려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자님 말씀을 되새기며 위안을 삼는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세 사람이 같이 가는데 착한 사람이 있으면 본받으면 되니 스승이고, 악인이 있으면 그를 통해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고치면 되니 또한 스승이 아닌가)’. 참으로 공자님 같은 말씀이다. 도산이나 백범 같은 스승으로부터는 그들의 언행을 따라하면 되겠거니와 요즘 같은 정치꾼들로부터는 저러면 안 되겠구나 하고 반성하면 그들도 스승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각박한 마음은 악인까지도 반면교사로 삼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데 여전히 문제가 있다.

각계에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품위 있는 언행과 솔선수범이 여전히 필요한 까닭이다.

<목원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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