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갖고 업무 매진땐 지방출신 한계 얼마든지 극복˝

지난달초 대전일보에 실린 이색 광고(6일자 12·13면)가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개교 45주년을 맞아 충남기계공고(이하 충기) 총동문회가 동문활동에 열성을 보인 157명의 회원 명단과 사진을 게재한 것.

이 광고로 인해 지역 사회에서는 끈끈한 ‘동문애’에 대한 미담이 꼬리를 물었고 충기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 학교 출신으로 현재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중인 하복동 감사원 감사위원(51)에게서 공직사회의 입문과정부터 실업고등학교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공직사회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충남기계공고 졸업 후 바로 동아건설에 입사해 3개월 가량 기능공으로서 일을 했다.

일도 재밌었고 월급도 많았지만 더 넓은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대학 진학 공부를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꾸준히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대학(충남대 사회계열)은 무리없이 들어갔다.

빨리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교양과목 때부터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해 2학년 때 1차 합격을 했지만, 자만감에 빠져 2차에서 계속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마음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고 1학년때 행정고시 1, 2차 모두 합격을 했다.

당시 고승덕 변호사가 수석을 했고, 차석을 내가 했다. 박성효 대전시장과 유정복 국회의원이 모두 행시 동기들이다.

10% 안에 들었기 때문에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재무부를 1지망으로 쓰고, 상공부, 내무부를 각각 2, 3지망으로 지원했는데 결과는 전혀 엉뚱한 곳인 보훈청으로 발령이 났다. 미필역이라는 이유다. 당시 5공 시절에는 장교가 1순위, 현역필, 보충역, 미필역 순이었다.

어쩔수 없이 보훈청에서 8개월정도 근무를 하다가 감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자리를 옮겼다. 1983년부터 감사원 밥을 먹었으니 올해로 벌써 25년째다.

-감사원 내에서도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해 감사능력과 기획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지방출신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공업고등학교 출신인데다 지방 대학교를 나와 사실 어려움이 많았다.

감사원은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고,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순이다.

든든한 선배도 없고, 학연, 지연, 혈연 등 뭐 하나 기댈곳이 없어 오로지 남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업무의 차별화였다.

남들이 취약한 재정, 경제금융 분야에 매진한 탓에 율곡감사(차세대 전투기), 외환위기, 신용카드 사태, 론스타 감사 등 굵직한 사건이 터질때마다 그 중심에서 일을 했다. 이때문에 후에 재정, 금융 분야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았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궂은일도 자처해서 도맡아 했다.

총무과장때는 “승진 일찍 하면 뭐 하나” 싶어 직원들의 후생복지, 감사원 리모델링 등의 일도 추진했다.

특히 매년 적자에 허덕이는 매점 활성화를 위해 충북에서 공수해온 참깨를 사다가 농협 방앗간에 맡겨 ‘하복동표 참기름’을 만들어 판매했다.

100% 믿을 수 있는 감사원표 참기름이라는 소문이 안팎으로 퍼지면서 지금은 감사원내 유명한 상품이 돼버렸다.

개인적인 소신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지방 출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버리려 노력했지만, 아직도 중요 요직에는 지방 출신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 점이 많이 아쉽다.

-올 초 모교인 충남기계공고를 방문해 성공한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한 특별 강연을 한 것으로 아는데….

▲원칙적으로 말해 나는 모교 출신의 성공모델이라고 볼 수 없다.

공업학교 출신임에도 행정관료라는 직책으로 학생들 앞에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청소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선배된 입장에서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중요성이란 주제로 내 경험을 비춰서 특강을 했다.

후배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폭발적이었다. 그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사회는 대학 출신을 우대하고 있지만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신이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목표를 다해 최선을 다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강에서도 그런 점을 여러번 강조했다.

-실업고등학교에 대한 생각도 남다를 것 같은데….

▲내가 충남기계공고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 공업을 지원을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모든것이 부족했다.

그때는 실습기자재가 부족해서 실습다운 실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올 초 모교를 방문해보니까 그때에 비해 여러가지 여건이 좋아졌지만 그만큼 학습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육 방향이 제대로 정립이 안돼 있어서인것 같다.

철저히 직업교육을 하고, 우수기능 인력 양성을 위한 그런 교육시스템으로 바뀌어져 한다.

지금은 실업고가 대학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은 직업교육 체제가 확립돼 실업고를 졸업하는 사람들의 처우나, 기능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업교육을 더욱 강화하면 경제인력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국제 경쟁력에도 간접 효과가 클 것이다.

-동문들이 사회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인간관계는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공업학교 출신들은 단합도 잘 되고 선후배들간의 관계도 끈끈한 편이라 동문회 활동 외에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모교 출신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을 하면서 후배들을 위한 장학지원 등을 꾸준히 해주고 있다. 축구부나 테니스부 등에 대한 지원 등이 그것이다.

향후에는 학교기업에서 생산해내는 제품을 모교 출신들이 소비를 해주거나, 모교출신 인력을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동문회를 중심축으로 다각도록 방법을 모색할 생각이다.

아직 모교 출신중에 국회의원 하나 배출하지 못했고, 동종 업계간 산업교류가 미흡한 면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때문에 이전보다 유대 관계를 긴밀히 다져 40여년 전통의 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지역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대전에서 나왔기 때문에 대전에 거는 기대와 애착이 크다.

모교 출신 후배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할 수 있도록 동문회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대전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찾아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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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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