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통령들의 민심 확인 방식은 제각각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주로 현장을 찾았다. 불시에 비서실장과 경호원만 데리고 공사장, 시장 등을 다녔다. 시·도 지방 순시 때는 수출업체나 기계공고, 혼·분식 현장 등에도 들러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일도 있다. 지난 70년 초, 그는 당시 경남 마산의 섬유공장을 방문했다. 국내 섬유수출 현황을 보고받고 난 그는, 어린 여공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여공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장장님이 가끔씩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저는 못 배운 게 한입니다.”

그는 즉석에서 “정부도 나설 테니, 직원들에게 야간학교를 만들어 주자”고 회사대표에게 제안했다. 일하며 배우는 ‘야간학교’가 그래서 개설됐다.

-대통령들 저마다 말로만 민심중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민심을 듣고 싶을 때면 ‘두 권의 노트’를 이용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노트다. 그는 일과 후 사저에서 각계각층에 전화를 걸었다. 꾸밈없는 바닥 민심도 들었지만, 때때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한번은 대학 총학생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김영삼이야” 하자, 저쪽은 “네가 김영삼이라고? 장난하지 마라. 임마” 했다. 재차 “나, 김영삼 대통령이라니까.” 하자, 그제야 알아차리고 난감해하는 학생에게 “요즘, 학교분위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공식 채널 외에 독대 등 스타일이 달랐다. 특히 DJ는 신문 정독과 TV토론을, 똑똑한 참모들을 의지했던 전·노 전 대통령은 저녁 뉴스시간대 여러 대의 TV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세상 얘기를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로 TV와 인터넷, 진보적 성향의 신문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 중 몇몇은 외면을 했던, 소홀히 했던 민심파악이 부실해 독재자 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현장을 강조하고 있다. 취임 직후 확대비서관회의에서 민심과 격리된 청와대를 경고했다.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현장 감각을 잃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이란 표현을 썼지만, 지적이 옳다. 그러면서 국민이나 현장과 격리되면 곤란하다고 했다.

업무보고도 현장에 가서 받겠다고 했다. 앉아서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어 국무회의나 부처순시, 워크숍 등에서 현장의 민심점검을 강조했다. 자신 스스로도 그러할 테니 장관들 역시 격식을 깨고, 발로 뛰라고 주문했다. 그는 서울시장 때나, 대선 후보 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실무자와 대화를 나눌 만큼 격식을 싫어한다.

그의 언급이 당연하며,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얘기들이 선뜻 와 닿지 않는다. 과거에도 정권 초마다 반복해 들어왔던 터라, ‘또 그 소리’ 들린다. 과거 대통령들도 취임 초엔 같은 얘기였다. 민심을 받들겠다, 겸손하겠다, 현장을 존중하겠다고 떠벌려왔다. 하지만 친·인척비리, 부실인사, 실책, 오기와 독선으로 세상이 요동쳐도, 민심이 흉흉해도 대통령들은 민심을 멀리했다. 그때마다 실망한 민심은 “대통령은 눈과 귀가 멀었느냐”는 호된 비판뿐이었다. 말만 풍성했을 뿐이다. 오죽하면 보통사람의 시대니,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참여 정부니 하는 구호가 술수로 비칠까. 그중에도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이 더 그랬다.

-난제의 해결의 비법은 현장.

손자병법 중에도 현장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최악의 군주는 수천 리 서울에 앉아 눈과 귀를 닫은 채 아첨꾼에 싸여 주지육림에 빠지고, 현장도 모르면서 전쟁 중인 장수를 함부로 교체하거나, 전술을 이래라저래라 멋대로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외치는 민심 점검과 현장 확인이 그래서 중요하다. 할 바엔 제대로 해야 한다. 대통령과 민심은 불가분의 관계다. 민심을 모르면 대통령과 국민, 정부와 국민은 멀어진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실패한다. 대통령만이 실패가 아니다. 국민이 실패하는 것이고, 나라가 실패하는 것이다. 민심을 모르면 권력의 횡포가 심해지고 책임정치가 사라진다. 민심을 향해 현장을 찾는다면 그게 섬김이고 머슴론인 것이다. 물론 몽테스키외의 말마따나 여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제의 해법은 현장, 그 민심의 바다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국정모니터링은 얽히고설킨 현장과 민심 가까운 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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