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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게 하면 따른다

2008-03-05기사 편집 2008-03-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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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굴지의 KSS 해운에 대한 칼바람 사정(司正)이 전격 취소됐다. 그 회사 박종규 회장을 탈세와 부정비리자로 몰았던 만큼, 이는 빅 뉴스였다. 당국은 더구나 그를 부도덕자로 낙인, 벼르고 별렀었다. 그러나 회사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그의 아들 편지 한 통에 사정 팀은 칼날을 거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의 아들은 미국 유학생이었다. 편지는 애원조였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제가 벌어 공부하겠다고 약속하고 왔지만, 한 달에 방값 400달러, 식대 100달러, 차량 유지비 등 750달러가 듭니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도 600달러밖에 안 됩니다. 아버지, 150달러만 빌려주세요. 꼭 갚겠습니다.”

환율가치로 150달러면 10만 원 정도였다. 당시 총자산 1600억 원, 연매출 780억 원대의 회사대표의 유학생 아들이 전액을 자신이 벌어 충당하면서, 월 10만 원이 부족해 구원을 요청했다는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 사정 팀은 평소 이렇게 아들을 가르쳐 온 아버지가 탈세 등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 사실이 공개, 기업 신뢰의 미담으로 전파됐다. 이 감동 스토리는 또 회사 전 직원에게 신뢰와 일체감의 불씨가 됐고, 그 결과 IMF 때도 큰 흑자를 일궈냈다. 믿게 하니 믿고 따르더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까스로 내각을 꾸렸다. 그러나 실망이 적잖다. 이 대통령이 발탁한 일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한심한 인사들 말이다. 인사 시스템이 부실한데다 검증도 엉망이었다. 언론과 야당이 총체적 부실내각이라는 공세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사가 잘못됐다는 시각이 잘됐다는 여론보다 2배나 높다. 국정 지지도 역시 49% 안팎으로 추락했다.

이 대통령이 주재한 지난 3일 열린 국무회의에는 노무현 정권 때 각료 4명이 참석해야 했다. 이른바 ‘노무현+이명박’의 합성인 ‘노명박’ 국무회의였다. 동거정부였던 셈이다. 지난 16대 때 한 정당이 다른 당 의원 꿔다가 원내교섭단체를 이룬 예처럼, 이번에는 직전정권의 각료를 참석시켜 국무회의를 연 것이다. 당연히 어색했고, 웃기는 일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인 만큼 신뢰와 감동을 기대했건만, 그 반대였다. 더 나아가 이들 중 3명의 장관 후보가 중도하차했고, 몇몇은 의혹에 여전히 휩싸여 있다. 임명된 인사들도 좋은 게 좋아서 그냥 넘어간 건지, 법과 제도·절차가 부실해선지, 아니면 코앞의 4월 총선 때문인지 은근 슬쩍 넘어갔다. 한두 명도 아니고 탈법, 투기, 표절, 허위 등 의혹덩어리다.

그들이 수백억 원, 수십억 원대의 부자여서가 아니다. 재산이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상위 1%인 재산가들로 구성된 내각은 ‘서민의 고된 삶은 곧 자신의 삶’이라며 서민을 대변할 것처럼 말해 온 이 대통령의 상징과 이력에는 흠이 생겼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공언해 온 그의 신뢰에도 의문이 간다.

기가 막힌 것은 당사자들이 곱지 않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졸렬한 변명과 답변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가진 자, 많이 배운 자 그것도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도덕불감증에 국민이 분노했다. 자기검열도 없이 공직을 맡겠다는 그들의 뻔뻔함에 놀랐다.

원인이야 인재풀이 좁았고 이 대통령이 아는 사람을 쓰다 보니 인사검증이 부실했다는데 이론이 없다. 찝찝하고 불쾌하다. 장관, 수석 임명은 인사의 시작이다. 이제 크고 작은 공직, 정부산하기관, 공기업 인사가 줄을 이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사를 기용할 때마다 국민 감동과 신뢰 없이 ‘이명박 표 국민성공시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시스템을 통한 철저한 검증작업 없이 진정한 ‘이명박 표 실용’이 가능할까. 이제라도 국가 청렴위 등에 검증을 맡기든지, 아니면 미국처럼 FBI를 거쳐 상원의 청문회에 넘기는 식의 새 인사 검증시스템을 검토해 보라. <본지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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