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가로림만 앞바다 ‘웅도’

서해 가로림만 앞바다에 떠 있는 서산시 대산읍 웅도(熊島)는 하루에 두 번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뭍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인 370m 길이의 콘크리트 다리는 밀물 때 잠겼다가 썰물이 되면 드러난다.

웅도는 갯벌 위로 소달구지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낭만이 넘치는 곳이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런 장면이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것은 주민들이 갯벌에서 채취한 굴을 소달구지에 싣고 오가기 때문. 갯벌에서 소달구지 한 가득 굴을 채취하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일상이었으나 기름유출사고 이후 굴채취는 중단됐다. 그러나 검은 재앙에도 불구 웅도를 중심으로 가로림만의 낭만은 살아 숨쉰다. 아픔을 이겨낸 덕에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초봄 가족 나들이 장소로 추천할 만하다. 적당히 드라이브를 즐기고 절경을 이루는 바다와 육지를 함께 둘러보는, 이런 아름다운 여행지는 흔치 않다.

웅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문신 김자점(金自點·1588~1651)이 역적으로 몰려 이곳으로 귀향을 오게 되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섬은 해안선 길이가 5㎞에 불과하고 면적도 고작 1.58㎢인 작은 섬이다. 장골, 큰골, 동편말 등의 섬마을에 사는 주민은 모두 54가구에 190여명. 소달구지로 명성을 쌓기 전에는 일년 내내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최근까지 관광객들이 수시로 몰리면서 이들이 함부로 갯벌에 들어가는 바람에 굴과 바지락이 자라는 어장이 훼손됐다. 게다가 갯일을 하느라 비닐 옷과 장화에 뻘이 잔뜩 묻어 있는 주민들을 사전양해도 없이 사진에 담는 바람에 주민들이 관광객을 꺼려하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오래된 농촌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섬을 찾을 때는 좀 더 조심해야 한다.

겨울부터 6월까지 굴채취 작업이 이어지는데 갯벌작업 모습은 전국 어디를 가도 볼 수 없을 만큼 이색적인 풍경이다. 갯벌 한 가운데로 경운기 대신 소달구지가 움직이기 때문. 굴과 바지락을 한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떼를 지어 빠져 나오는 장면은 현실감각을 잊게 할 만큼 경이롭다.

소는 달구지에 하루종일 먹을 여물을 가득 싣고 일터인 갯벌로 나가 돌아올 때는 80㎏쯤 되는 바지락이나 굴을 싣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소달구지로 인해 갯펄에 바퀴자국이 깊게 패여 우도(牛道)가 만들어져 있고 은빛으로 물른 갯벌 위로 느릿느릿 걸어 마을로 돌아오는 소는 우직하고 충성스러워 보인다. 소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고 주인도 고삐를 당기며 재촉하지 않는다.

소가 없을 당시에는 주민들이 작업장까지 직접 실어 날랐다고 한다. 아낙네들이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아 삼태기에 담으면 남자들이 지게에 옮겨지고 운반했다고. 갯일도 힘들지만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걷는 것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농촌에서 경운기에 밀려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소달구지가 아직까지 명맥을 잇는 게 재미있다. 소달구지를 운송수단으로 요긴하게 쓰는 곳이 이곳 말고 또 있을까.

경운기는 바닷물에 쉽게 부식되는 데다 엔진이 자주 망가지고 한번 빠지면 쉽게 빼낼 수 없어 50여 년 전부터 소달구지로만 갯벌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이곳의 소는 육지의 소와는 다르다. 체구가 작고 근육이 발달돼 단단해 보인다. 웅도에서는 외지에서 사온 소를 쓰지 않는다. 요즘 소는 달구지 끄는 법을 몰라 매놓으면 날뛰기만 한다. 주민들은 아예 송아지를 사오거나 웅도에서 태어나 자란 소에 달구지를 매단다.

방문할 때는 물때를 미리 살펴야 하며 서산시 문화관광과(☎ 041(663)2498)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웅도를 들른 뒤 해미읍성과 개심사(開心寺), 서산 마애삼존불을 찾은 다음 남쪽의 간월도에서 낙조를 감상하는 코스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미읍성은 1866년 병인박해 때 김대건 신부 등 천주교인 1000여명이 순교한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박해 현장을 증언하는 읍성 내 회화나무는 숭고하게만 느껴진다.

해미면에서 6㎞쯤 떨어진 상왕산(307m) 기슭에 자리잡은 개심사는 찌든 마음의 때를 씻고 정신수양를 위해 찾아갈 곳으로 권할 만하다.

산길 입구의 ‘세심동(洗心洞)’이라 새겨진 입석부터 예사롭지 않다. 절마당까지 이어진 굽이진 산길이 정감 있고 연못위 외나무다리가 운치 있다.

개심사에서 저수지를 끼고 차로 10분 남짓 이동하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작품인 국보 84호 마애삼존불을 볼 수 있다. 6세기 중엽 백제 작품으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여래입상과 반가사유상, 보살입상의 웃는 모습이 제각기 다르게 보이는 신비한 마애불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1시간 남짓 이동하면 바다위에 구름속 연꽃처럼 피어 있는 작은 섬 간월암(看月庵)을 만날 수 있다.

간월도는 A지구 방조제와 연결돼 육지가 됐다. 간월암에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 한 분이 상주하고 있다. 하루 두 번씩 밀려오는 썰물 때 물이 빠져 자갈길로 육지와 연결되는데 절마당의 팽나무가 운치 있고, 바닷물에 은은히 비친 간월암 낙조는 다른 어느 명승지에서 뒤지지 않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암자를 지었고 1941년 만공선사가 새 절을 지어 간월암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송영훈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송영훈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