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가르타 탄생 ‘불교 4대 성지’ 순례자 줄이어

인도의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네팔의 국경으로 향한다. 세계의 지붕이라 말하는 네팔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의 아름다운 설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두근거리는 설렘을 진정시키면서 네팔의 국경도시 소나울리로 들어선다. 네팔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도를 떠나는 출국신고와 네팔로 들어가는 입국절차가 국경지대에서 이루어진다. 소나울리에서 12㎞, 카트만두로부터는 250㎞ 떨어진 곳에 ‘룸비니’라고 하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있다.

룸비니는 인도의 ‘붓다가야’, ‘사르나트’, ‘구시나가라’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마야 데비 사원’(Maya Devi Temple)이 있다. 바로 ‘성스러운 정원’(The sacred Garden)이라 부르는 곳이며 이곳에서 싯다르타 고타마가 기원전 623년에 탄생하였다.

석가모니는 히말라야산 기슭 카필라성 샤카족 출신의 성자이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기 전 하얀 코키리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출산을 친정에서 맞이하고자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데바다하’로 향하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후 7일째 되던 날에 마야부인은 사망하였고, 석가모니는 이모 마하파자파티에 의하여 양육되었으며, 생후 명명식에서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을 가진 ‘싯다르타(Siddhartha)’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얻은 깨달음의 깊이를 추측으로나마 짐작하며 동이 트기 전 ‘성스러운 정원’으로 가기위해 릭샤를 타고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릭샤로 10분쯤 간 곳에 다시 조그마한 사원의 입구가 있다. 새벽의 어둠은 관리인도 잠에서 깨우지 못한다. 조금을 기다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어둠 속에서 부스스 아침잠을 깬 정원 위의 아름다운 꽃들이 새벽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성 같은 느낌을 주는 ‘마야 데비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걸으면서 성역을 돌아볼 수 있는 철로 만든 난간이 있다. 폐허가 된 사원의 흔적들이 복원을 기다리며 어수선하게 방치되어 있는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러나 사원 깊은 곳에 기원전 3세기경 만들어졌다는 부처님 탄생장면을 묘사한 ‘마야데비’의 석조작품이 놓여 있고, 유리관 속에 보존된 부처님의 탄생지의 표지석이 새벽을 깨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어준다.

밖으로 나오니 사원 옆에 높이 7.2m의 ‘아쇼카 석주’가 있다. 기원전 250년경 인도의 ‘아쇼카’ 왕이 이곳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탄생한 위대한 분을 경배하기 위하여 이 석주를 세우며, 위대한 분이 탄생한 이곳 룸비니 마을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1/8만 징수하게 한다.`는 내용과 함께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훨씬 훌륭하다’ 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아쇼카 왕은 인도 역사에서 가장 넓은 땅을 통일하고 다스린 국왕이었다. 그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통감하면서 국가가 구하는 평화가 무기나 군대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덕에 의한 정치의 노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쇼카 왕 자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널리 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왕비와 왕자, 대신들에게까지 불법을 배우게 하였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불법을 펼쳤다. 그는 1000명의 승려로 하여금 경전을 편찬케 하였고,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키프러스, 스리랑카와 같은 여러 나라에 불교사절단을 파견하였으며, 불사리(佛舍利)를 재발굴하여 8만4000의 탑에 분납하여 불교도들의 예배 대상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아쇼카 왕의 정신을 오롯이 지니고 있는 듯 ‘아쇼카 석주’가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앞에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출산하기 전 목욕을 한 곳으로 전해지는 연못 ‘프스카르니(Puskarni)가 있다. 순례자들이 이곳의 성스러운 물을 마시며 특별한 불심의 축복을 기대하는 곳이라는데 지금은 많이 오염된 느낌이다. 연못 건너편에는 수백 년 묵은 보리수들이 수도 없이 서 있다. 수백년을 묵묵히 이곳을 지켜온 보리수 사이가 오색찬란한 깃발들의 띠로 연결되어 장관을 이룬다. 마치 행위미술가들에 의한, 불교 미술의 퍼포먼스가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 거대하고 웅장하게 펄럭이는 깃발들이 현란하리만큼 아름답게 보인다.

‘마야데비 사원’을 떠나면서 석가모니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겼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제행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 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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