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불태운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 방화범의 방화동기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라니 황당하다. 전문가들은 그를 정신질환 아닌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로 진단했다. 이번 ‘국보테러’는 정부가 국가적 문화재를 얼마나 소홀히 해왔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또 수백억, 아니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닌 국보를 겨우 9800만 원짜리 보험에 가입한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이러고도 우리가 ‘문화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예산이 없어 밤에는 국보1호에 경비원 한 명 두지 못했다니 기가 막힌다. 전문가들은 “문화재관리의 최대 적(敵)은 부족한 예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 관리와 보호를 위한 기금은 전혀 없다고 한다. ‘5000년 역사’니 ‘문화민족’이니 떠드는 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서양의 문화 대국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보라. 그네들은 문화재 보호와 복원예산이 문화부 총 예산의 절반에 이를 정도다. 정부도 정부지만 국회는 지금껏 뭘 했는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지난 2005년 11월 문화재 보호기금 5000억 원을 조성하는 ‘문화재 보호기금법’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런데 그 후 2년 3개월이 넘도록 이 법안이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으니 울화통 터질 일이다. 만일 이 법안이 통과돼 시행됐더라면 이번 방화사건은 안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이것뿐만 아니라 문화재보호 관련법 21건이 아직도 국회에 계류돼 있고, 한미FTA 비준동의안도 국회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라니 문제다.

여야 모두 총선에 대비한 정치적 계산으로 눈치만 봐 왔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지난해 초 협상개시 선언 단계에서부터 많은 토론과 검토를 거쳐 왔다. 그런데 다시 공청회를 열자는 주장이 나오니 이해할 수 없다. 또 이밖에 수백 건의 법안이 국회 상정도 못 한 채 폐기될 운명에 있다. 여야 국회의원의 나태와 눈치 보기, 그리고 정부의 무능 탓이다. 이러니 국회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낮잠 자고 있는 수많은 법안은 뭘 의미하나.

일하지 않는 국회 상(像)을 보여준다. 앞서 지적한 문화재 보호기금법이나 한미 FTA법안은 벌써 통과시켰어야 했다. 오는 4월 9일 제18대 총선이 실시되고 얼마 후면 17대 국회도 끝난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마다 국회의원 출마 후보자들이 밀려들어 공천자를 가리는 심사가 한창이다. 총선 때마다 그렇듯 철새처럼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정치인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어제 창당했던 정당이 없어지고 오늘 새로운 정당이 창당된다.

또 이념과 노선이 다른 당과 당의 통합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은 밀려드는 후보자로 즐거운 비명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과 장관후보 물망에 오른 많은 인사들은 임명 제의를 마다하고 국회의원 출마를 희망하고 있다 한다. 국회의원이 좋긴 좋은 모양인가.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 국민은 국회의원을 별로 좋게 보고 있지 않다.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고 일은 안 하기 때문이다.

이권과 인사에 개입하고, 받아서는 안 될 부정한 돈을 받는 게 국회의원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뇌리에 박혀 있다. 국회의원들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엊그제 국회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또 다시 의원수를 최소한 3명 정도 늘리기로 결정했다 한다. 이대로 되면 현재의 299명에서 꿈(?)의 300명대가 된다. 일 안하는 국회의원을 늘리기만 해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의원수를 되레 절반으로 대폭 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적어도 100명은 줄였으면 한다. 비용만 많이 들고 생산력이 낮아 비효율적인 게 우리 국회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상원이 100명, 하원이 359명으로 총 459명으로 총 인구 3억에 비해 4800만인 우리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새 정부가 조직을 줄이고 있고 지방정부도 이를 뒤따르고 있는 이때 국회도 절반, 또는 3분의 2 정도로 슬림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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