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출현과 함께 ‘실용주의’(pragmatism)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그 용어가 풍기는 긍정적인 선입견 때문인지 어느새 실용주의는 조자룡의 헌칼일듯, 권력화되는 조짐마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가 지니고 있는 본래 정신에 대하여 논의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프래그머티즘’이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 ‘프라그마’(pragma)에서 만들어졌다. 프라그마란 ‘행하여진 것’, ‘행위’, ‘행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본다면 프래그머티즘이란 행위의 결과, 즉 행위의 실제적인 효과와 효용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실용주의’가 도덕이나 종교적 가치 등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프래그머티즘이란 말이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98년, 프래그머티즘 제창자의 한 사람인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가 미 캘리포니아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였다.

당시의 미국은 남북전쟁 후 통일국가를 형성하면서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을 전기로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단계에 있었다. 이렇게 세상이 급변하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날로 더욱 실리적이고, 기술적이고 또한 실제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모든 문물 제도의 밑바닥에서 유·무형으로 미국인들의 사상과 감정을 결정적으로 지배해 온 기독교적 퓨리터니즘(청교도주의)과 충돌하게 되었다. 퓨리터니즘의 도덕적·종교적 관념과 기술적·실제적 사고방식 사이의 부조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종래의 이상주의와 새로이 출현한 현실주의의 마찰 사이에 하나의 균형 잡힌 세계관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프래그머티즘은 바로 이러한 미국사회의 시대적 요구에 대한 훌륭한 응답이었던 것이다.

특히 프래그머티즘은 ‘관용’을 강조했거니와 이를테면, 심지어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신앙에 대해서까지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프래그머티즘에 대한 피상적 관념에서 볼 때는 얼핏 수긍이 잘 안 되는 뜻밖의(?) 덕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용의 정신은 오늘날 미국을 저만큼 융성케 한 가장 중요한 정신적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실용주의가 꼭 실리와 효율 지상주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용주의가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엄격주의만을 표방하는 것이 아님도 알 수 있다.

요컨대 실용주의는 미국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신앙’과 ‘관용’ 위에 세워진 실리적이고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그리고 영리한 철학인 것이다.

실용주의의 기치 아래 이명박 정부의 첫 행보로서 대통령직인수위 활동이 왕성하게 펼쳐졌다. 대운하 건설 문제, 영어교육 문제, 정부조직개편 문제, 입시개선 문제 등등… 국민정서에 크게 걱정을 끼칠 수 있는 핫이슈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에서 ‘잘했다’는 평가는 응답자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도덕과 관용, 배려와 존중 그리고 품위와 예(禮)에 관하여 음미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대목이다.

모처럼 이명박 정부가, 미국사회를 유사 이래 최고로 번영시킨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상, 그 본래 정신을 충실하게 구현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조국의 씩씩한 건설과 발전을 바라보면서 희망에 한껏 부풀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문종욱<충남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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