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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설빔

2008-02-06기사 편집 2008-02-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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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날에는 세뱃돈을 못 받아서 아쉽네요. 이 편지에다 세배하면 세뱃돈 부쳐 주실 거예요?”

마지막 5주차 훈련을 남겨놓은 군대 간 아들의 편지 일부분이다.

“사회에서 먹지도 않는 건빵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되어 버렸네요. 엄마 아빠, 건빵이 너무 맛있어요. 별사탕도 맛있고….”

입영 후, 첫 번째 편지에 이렇게 써 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게 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한 가족의 구성원이 셋 또는 넷이다. 우리 집도 넷이다. 연초 아들이 입영을 하게 됨으로써 셋이 되었다. 훈련소에 입소를 시키고 돌아왔더니 집안에 찬바람이 휭 돌았다.

사람이 든 자리는 표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남은 세 식구마저 각자 흩어져 방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길을 가다 보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군인만 봐도 울컥했다.

요즘은 군대도 좋아져 인터넷을 통해 훈련소 전용 카페를 신설해 놓고 있다. 편지도 카페에 올리면 매일매일 출력을 하여 훈련병들에게 전달해 준다. 카페에 올라온 편지들을 읽다 보면 부모의 마음이란 한결같다. 걱정과 근심으로 가슴을 죄며 품안에 품고 있다. 예전에는 몇 대 독자면 군대를 면제해 주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자가 아닌 아이가 드문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부모대로 애잔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다고 한다. 더불어 강인한 군인을 만들어야 하는 훈련소의 역할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 같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만큼 사랑으로 자식처럼 보살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훈련소에 입소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보내온 부대장의 편지 내용이다. 군에서도 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해당부대의 부대장을 여성 부대장으로 배려한 것 같다. 정말 그 편지를 읽다 보니 적이 안심이 되는 것을 보면 그 효과가 그만이다.

“며칠 후면 설날이네요. 집에서 주시던 떡국이 먹고 싶어집니다. 올해 설날 저의 설빔은 군복이네요. 씩씩한 아들이 되겠습니다.”

아들이 없는 설을 처음으로 맞는다. 이번 설에는 군복이 설빔이라는 아들의 편지에 가슴이 뭉클하다.

문득 아득한 옛일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입성이 넉넉해 특별히 설빔을 준비하는 가정이 없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정말 남달랐다. 돌이켜 보니 나의 부모님은 한 번도 설빔을 건너 뛴 적이 없었다.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항상 5남매의 설빔을 준비했다. 설날 아침, 설빔을 입은 5남매를 일렬횡대로 세워놓고 흐뭇해하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설날이 임박하면 나는 마치 그것이 가풍인 양 아이들의 설빔을 준비한다. 요즘 아이들이야 부모가 준비하는 옷에 시큰둥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희 남매의 설빔을 마련해 입혔다.

“올해는 옷 안 사 줘요?”

집에 남은 딸아이가 묻는다. 늘 하던 행사를 안 하니 제 딴에는 서운한 모양이다. 설을 앞두고 옷 가게 앞을 서성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휴가라도 나오면 입을 수 있겠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선뜻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내년 설까지 아들의 설빔은 군복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나이에 꼭 입어야 하는 설빔을 외면하려 했던 미련이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섣달 그믐날이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