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많은 분야에서, 특히 음식이나 음악 등에 자주 사용되는 퓨전(fusion)이라는 말의 원조는 금속재의 용접에서 사용된 것으로 안다. 서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금속재를 접합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가장 깔끔한 방안이 용접(welding)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금속재를 용접기술을 이용하여 접합하는 원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물체가 접합되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체를 통하여 힘이 전달된다는 것이고, 힘이 전달되려면 금속을 구성하는 결정구조(結晶構造)로 서로 연결이 되어서 원자(原子) 간의 결합력이 작용하는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 즉, 분리된 금속재가 서로 결정구조로 연결되려면 두 금속재가 인력이 작용하는 원자 간의 거리로 간격이 좁혀져야 한다. 원자 간의 거리는 대략 0.1 나노미터인데 자연에 있는 금속재의 표면은 공기 중에 산화되어 산화물로 덮여 있어서 그대로는 서로 접합될 수 없다. 따라서 용접기술은 접합시키려는 두 금속재의 접합면을 가열하여 부분적으로 그 표면을 녹여서 접합면 표면에 있는 산화물이나 불순물을 분리시키고 냉각과정에서 새로운 결정구조가 생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두 접합면을 녹이는 것이므로 이러한 용접방법을 퓨전용접(fusion welding)이라 한다. 용접기술에는 녹이는 방법 외에 압력을 가하거나 마찰열을 이용하여 접합면의 산화물을 밀어내어 버리는 압력용접(pressure welding)도 있다.

용접기술의 주요 원리인 퓨전을 보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인용할 만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음식이나 음악 등과 같은 인류의 문화생활에 있어서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맞닿았을 때 그 경계면에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지 않으면 융합(퓨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퓨전은 껍질을 깨고 속살이 드러나야 제대로 어우러지는 것이며 단순한 섞임(믹스)과는 다른 것이다. 퓨전을 통하여 두 문화 간에 어울리지 않는 것, 즉 접합된 금속재료의 결정구조와 같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은 불순물로 퇴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두 개의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은 원자 간의 결합력이 작용하는 간격만큼 가까워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더도 덜도 아닌 최적의 간격은 에너지 레벨이 최저가 되는 간격이다. 에너지 레벨이 최저가 되는 상태는 가장 편안한 상태인 것인데, 문화적 퓨전 역시 편안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용접은 금속재 및 비금속재의 접합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매우 유용한 기술이지만 잘못 설계 시공되면 용접부에 균열이 발생하여 구조물의 붕괴에 이르는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경험한 성수대교 붕괴의 주요 요소로 작용한 것도 용접 결함이라고 보고되었다. 용접 결함은 시공 과정 중에 퓨전 되었던 부위가 급속도로 냉각하면서 금속 조직이 경화되어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여 사용 중에 큰 균열로 성장하여 결국 파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주요 용접 결함으로는 서로 다른 부재를 용접하면 구조적 변형의 차이에서 유발되어 내부적으로 남아 있는 스트레스(응력)가 사용 중에 균열로 발전하는 것이다. 문화적 퓨전도 서로 다른 문화의 결합이라는 점에 있어서 비슷한 특성을 가진 것이어서 퓨전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나 발전적인 새로운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서서히 기존 문화와 융화하지 않으면 그 사이에 금이 생기게 된다. 또한 이질적인 문화의 퓨전은 신토불이(身土不二)를 고집하는 고유의 문화와의 사이에 스트레스가 발생하여 갈등의 깊은 골짜기를 만들 수도 있다.

글로벌 시대에 사는 우리는 동시에 싫든 좋든 퓨전시대에 살게 된다. 퓨전시대에 생겨나는 퓨전문화는 새로운 가치의 문화로 우리의 문화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특정 계층만이 선호하는 것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용접기술의 적용 사례를 참고 삼아 접합면을 잘 살펴서 문화 간의 갈등으로 금이 가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한다.

이종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안전인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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