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었지, 이렇게 푸른 태안의 품 속으로…

안면도의 소나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따 안면송이라 불린다. 붉은 빛을 띠는 홍송으로 곱고 화려하고 단아하고 단단하고 향기도 진하다. 잔가지 없이 곧게 뻗는데다 위아래 둘레 차이가 거의 없어 훤칠하다.

안면송 군락지에 들어서면 솔향기가 그윽하고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뚫려 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을 즐기거나 산림욕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산림욕은 겨울에는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은 버리자. 이 안면송이 내뿜는 강력한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에 겨울 내내 어둡고 무거운 마음의 때가 벗겨지고 금세 상쾌하고 가벼워지게 됨을 실감할 수 있다.

이번 주말, 80년 이상 된 안면송 17만 그루가 장장 434㏊에 걸쳐 살고 있는 안면송 군락지에서 산림욕을 즐겨보면 어떨까. 한적한 소나무 숲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 한 자락을 얼굴에 받는 삼림욕은 적극 추천할 만하다.

▲조선왕조의 숨결 간직한 정당리 소나무 군락지=안면도에 들어서면 육지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를 맡을 수 있다. 안면송이 내뿜는 향기 때문이다. 정당리 소나무 군락지는 연륙교를 건너 77번 국도를 타고 10㎞ 정도 남쪽으로 가다 보면 도로를 따라 조성돼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만한 볼 수 없는 소나무숲 절경이 긴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소나무 길이는 보통 15-20m 정도. 큰 것은 30m까지 자라 하늘을 덮을 정도다. 안면송은 지역 특유의 해양성 기후 덕에 나무에 옹이가 없고 키도 커 육지의 소나무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이곳의 소나무숲은 조선시대 초부터 나라가 관리하는 숲이었다. 안면도는 해상교통을 통해 서울까지 3일이면 갈 수 있는데다 숲을 보호하기에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어 왕실의 숱한 건축사업에 사용할 소나무를 조성할 적지로 간택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안면도 전역의 출입을 통제하고 산지기 70여명을 두어 소나무를 지키면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봉산(封山)을 73개나 두었다.

어렵게 지켜낸 숲이지만 옛 모습과는 좀 다르다. 100년 이상 된 나무는 많지 않은데다 일제 감정기에 베어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인들이 송진 채취를 위해 나무마다 칼집을 냈고 6·25전쟁을 거치며 나무들이 많이 상했다. 현재 안면송림은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돼 다행히도 되살아 나고 있다.

▲온몸을 자연에 맡길 수 있는 안면도 자연휴양림=1992년 9월 개장해 우리나라 대표 자연휴양림으로 자리잡은 안면도 자연유양림.

안면도 남쪽 끝 영목항까지 이어지는 77번 국도를 따라 고남 방면으로 가다가 꽃지해수욕장 입구의 넓은 벌판 뒤로 안면송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도착한 순간 진한 솔향기에 금세 기분이 상쾌해진다. 소나무 향기가 전신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듯한 느낌이 간지럽기까지 하다.

175㏊의 넓은 소나무숲과 11㏊의 수목원, 여러 채의 숲속의 집, 3.5㎞ 구간의 산책로, 우리나라 전통 정원, 전망대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빨간 보도블록을 따라 숲속길로 들어가면 목재 생산 과정과 용도, 산림의 효용가치를 전시해 놓은 산림전시관이 보인다. 소나무 피톤치드를 체험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시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숲속의 집이 위치해 있다. 모두 21개 동에 5-19평까지 다양한 크기의 집들이 마련돼 있다. 요금은 2만-7만원 선.

소나무숲을 따라 3.5㎞로 조성된 산책로는 흙길에 솔잎이 덮여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고 주위에 안면송과 야생화 등이 피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겨울에는 곳곳에 피어 있는 빨간 애기동백꽃이 눈을 자극한다.

휴양림관리소의 김혜경씨(36·여)는 “눈 오는 날에는 휴양림 전체가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처럼 자연스러운 풍미를 전한다”며 “안면송이 내뿜는 진한 향기에 몸에 있던 노폐물은 물론 피로까지 깨끗하게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염주를 낳는 희귀식물 모감주나무 군락지=세계적으로 희귀한 모감주나무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는 안면도 모감주나무 군락지.

방포포구에서 안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주차장과 버스정류장 바로 옆으로 천연기념물 제138호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자리잡고 있다. 모감주나무는 7월초에 긴 꽃대를 타고 황금빛 꽃을 피워 서양에서는 ‘골든 레인 트리(golden rain tree)’라 부른다. 꽃이 활짝 피면 황금비가 내리는 것같이 황홀하고 아름답다.

꽃이 진 뒤 굵은 콩만한 윤기 흐르는 씨앗이 생기는데 돌같이 단단하고 만지면 만질수록 윤기가 나 스님들의 염주재료로 사용됐다. 모감주나무의 잎과 꽃은 염료로도 사용되며 한방에서는 꽃잎을 말려두었다가 약재로 사용하면 요도염, 장염, 치질, 안질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0년 전에는 1000여 그루가 넘는 모감주나무와 30여 종의 나무들이 어루러져 울창하고 건강한 숲은 이뤘지만, 현재 울타리안에서 350여 그루의 모감주나무만 보호받고 있다.<송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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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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