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졸업 전에 혼자 떠나는 지역 문화재 탐방-예산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마을 에 위치한 추사 고택(古宅)은화려한 맛은 없지만 당대 지식인의 깐깐한 멋이 느껴진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마을 에 위치한 추사 고택(古宅)은화려한 맛은 없지만 당대 지식인의 깐깐한 멋이 느껴진다.
예산은 부여나 공주 못지 않게 은근히 볼 만한 백제 관련 문화재가 많다. 예산의 옛 이름은 백제 때에 오산현(烏山縣)으로 이곳 대흥면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본거지였던 임존성이 자리잡고 있다. 천년고찰인 수덕사의 창건이 백제시대였고, 화전리에는 백제시대 유일한 사면석불이 남아 당시에도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가르쳐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추사체를 만든 추사 김정희, 일제 강점기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일본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모두 예산사람이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마을에 위치한 추사 고택(古宅)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당대 지식인의 깐깐한 멋이 느껴진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43호로 지정된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추사의 영정을 모셔놓은 영실로 구성돼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사랑채가 ㄱ자 평면으로 대청을 사이에 두고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직각으로 놓여 있다.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고 단정하게 서 있는 사랑채의 모습은 추사의 고고한 인품이 느껴지는 듯 하다. 특히 추사 고택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의 창들이 여럿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랑채는 불발기창을 내어 빛이 들어오게 했고 안채의 작은부엌의 넉살문은 채공과 통풍을 위한 것이다.

사면석불로는 가장 오래된 화전리 사면석불은 몇 안되는 백제의 석불 중 단 하나밖에 남지않아 그 의미가 크다. 거대한 돌에 부처님의 상이 4면에 새겨진 것으로 중국의 마애불과 양식적으로 유사한 점도 많아 서산 마애불보다 앞선 시기에 제작됐을거라 추측하기도 한다.

얼마 전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이 도시락 폭탄이 아니라 물통 폭탄이 었음이 밝혀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예산군 덕산면 시랑리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사적지는 생가와 네 살 때부터 중국 망명 전까지 살던 집이 따로 있다. 둘 다 조촐한 초가집이다. 성장기에 자란 집은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뜻으로 윤봉길이 지어 붙인 저한당(狙韓堂)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다. 사적지 내 위치한 기념관에는 상해 홍구공원에서 의거할 때 지니고 있던 소지품과 생전에 쓰던 서책 등이 전시돼있다. 전시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상해에서 의거하기 전 김구 선생이 작별 시 서로 바꿔가졌던 회중시계다. 또 사적지 건너편에 위치한 사당 충의사에서 해방 후 돌아온 유해가 모셔져 있다.

덕숭산 밑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우리나라 불교계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산총림이 있는 조계종 제 7 교구 본사다. 1308년에 세워진 대웅전은 기품을 간직한 채 경내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오래된 건축물이다. 건립년대가 뚜렷해 고건축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국보 제 49호로 지정돼있다.

고암 이응로 화가가 머물렀던 수덕여관이 수덕사 못미처 위치해 있다. 미술관으로 재탄생된 수덕여관은 옛멋이 사라진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고암이 직접 새긴 바위그림은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1960년대 고암이 즐겨 그렸던 문자추상이다. 넓적한 바위에 새겨진 암각하는 한글 자모들이 서로 엉키면서도 아름답게 풀려 가는,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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