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매월 4번째 주 목요일에는 대전시청 주차장이 폐쇄된다. 대중교통이용활성화를 위해서다. 물론 국제원유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중구청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은 40%로 줄었다. 고유가 대책의 일환이다. 행정기관뿐이랴. 가계부문도 마찬가지다. 기름 값이 심리적 한계선을 넘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이제는 현실적인 경제사정상 절약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돌입했다.

이제는 졸라맬 허리도 없다

그렇잖아도 불황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맸다. 하지만 반기는 것은 아낀 만큼의 부의 축적이 아니다. 얄팍해진 지갑을 더 열라는 주문뿐이다. 고유가의 영향이 일파만파로 번진 탓이다. 더 이상 어쩌란 말인가. 역경을 딛고 일어설라치면 불어 닥치는 고유가열풍이 이번만이 아니다. 이른바 70년대 2차례에 걸친 ‘오일쇼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사건이 왜 자꾸만 재발하는가라는 의문을 부르는 고유가상황은 추억을 반추하게 만든다.

1973년 5월 세계최고 금융 및 정치계 내부자 84명이 살트셰바덴이란 섬에 모였다. 이를 빌데르베르크 모임이라고 부른다. 미국측 참가자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가가 400% 인상될 것이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방대책논의가 모임의 목적이 결코 아니었다. 목적은 급증하는 석유달러수입 관리방안에 대한 논의였다. 빌데르베르크의 정책은 세계유가 극적 인상을 위해 석유수출공급을 제한하는 것이었다고 후에 밝혀졌다.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한다. ‘욤키프르 전쟁’이다. 원인은 오판이나 실수가 아니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특별보좌관인 키신저가 개발한 외교채널을 이용한, 미국과 영국 정부의 비밀계획이라고 역시 후에 드러났다. 곧 사아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리비아·아부다비·카타르·알제리 등은 원유감산을 선언했다. 이스라엘 완전철수 등 조건이 충족될 때가지 매달 5%씩 추가감산을 덧붙였다. 시나리오대로다. 이른바 70년대 제1차 ‘오일쇼크’가 시작된 것이다.

제2차 오일쇼크 진원지는 이란이다. 정권을 장악한 자원민족주의자 무하마드 모사테크는 1951년 이란내 영·미 석유회사들의 권리를 몰수했다. 그러나 영국 등의 경제봉쇄 등으로 모사테크는 축출된다. 대신 국왕체제로 변경된다. 이 국왕은 산업화를 추진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과 손잡고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 그 일환이다. 때맞춰 영국 석유회사와 이란정부간 석유채굴협상이 1978년 결렬됐다. 영 석유회사가 향후 25년간 이란의 석유생산량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면서 구매보장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협상의 주요내용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공작을 펴 국왕을 몰아내고 호메이니를 권좌에 앉혔다. 그리고 원유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은 죄는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일쇼크 전 미국 달러화 가치의 하락으로 유럽과 일본 등으로 달러가 대규모로 흘러 들어갔다. 달러화의 세계지배가 위기를 맞게 됐다. 추세를 되돌려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미국과 영국의 정치가나 보수적인 금융업계를 압박했다.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이를 세계경제 역행시키기로 명명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우디아라리비아는 비밀협상에 따라 급증한 원유수입금을 영·미은행에 예치시키고 미국 재무부 채권매입에 상당부분을 투자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석유가격인상으로 석유수출국은 전 세계인의 지탄을 받고 이익은 미국과 영국의 금융계가 챙겼다는 사실이다.

미국 금융계는 현재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와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의 특성상 다른 국가와 금융기관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히 크다. 내부자들은 이것이 터질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오일쇼크를 반추해보면 현재의 고유가 원인이 단순한 수요공급법칙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할 우리가 진 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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