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맞았던 정해년(丁亥)도 이제 나흘 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황금돼지해’로 불려 그 어느 해보다 기대가 컸던 2007년. 그러나 올 한해는 숱한 사건 사고와 대형 이슈로 점철돼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였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대통령을 새로 뽑고,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또 다른 한해가 시작되는 새해, 무자년(戊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큰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아프간 인질사건, 대담한 거짓말로 비롯된 신정아 사건,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뇌물 사건, 대선 막판 온 나라를 뒤흔든 BBK사건 등등… 그리고 미국 이주 한국청년이 동료 대학생과 교수에 총기를 난사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연말 태안앞바다 유조선 기름유출사고는 온 국민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국민 모두 사기꾼에 놀아나

이 같은 대형 악재들은 물과 얼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1년 내내 국민을 환호케 한 박태환(18·수영)과 김연아(17·피겨스케이팅)등 우리 청소년들의 쾌거를 잊게 했다. 또 한미 FTA타결과 여수엑스포유치, 대구 세계육상대회유치 등 굵직한 낭보를 빛바래게 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 올해의 키워드는 뭘까. 누가 뭐래도 ‘거짓’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7년 우리 사회에 유난히 ‘거짓과 불신이 판을 친 한해’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자신과 남을 속인다는 뜻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선정했겠는가. 그 어느 해보다 거짓과 위선이 판친 한해여서일 것이다. 가짜학위와 가짜논문, 거짓진술 등이 1년 내내 이어져 대한민국을 불신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런데 일본도 올해의 한자로 거짓이라는 의미의 ‘위’(僞)가 선정돼 한일 간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 1년 내내 불량식품파문이 끊이지 않은 게 선정 이유다.

그러나 일본의 ‘위(僞)’는 한국의 ‘自欺欺人’에 비하면 속된 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 ‘새 발의 피’다. 변양균 전 실장이나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권력형 비리와 뇌물수수혐의를 부인하며 거짓말로 일관한 것은 국민을 허탈케 했다. 대학총장 등 내로라하는 교수들의 논문표절 등 위선이 그 어느 해보다 기승을 부린 한해였음은 사실이다.

그 중 신정아사건과 BBK사건이 가장 두드러진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사건은 개인 차원의 단순한 위조사건이 아니었다. 내연의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이 신 씨를 위해 특별교부세를 불법지원해 구속됐고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학계, 종교계, 문화계로 얽힌 비리는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또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 각계에서 성공한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사실이 봇물 터지듯 해 학력만능 풍조의 부작용이 가감 없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직·신뢰 넘치는 새해 돼야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와 관련된 BBK사건은 검찰이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내렸음에도 대선을 앞두고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경준 씨의 거짓말과 사기행각으로 밝혀졌다. 아직 특검이 남아 있긴 하지만, 사기꾼 김 씨와 그 가족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언론이 춤을 춘 사건이었다. 삼성비자금의혹사건 폭로는 정치권과 대기업,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보여줬다.

이제 거짓과 불신으로 점철됐던 정해년 한해도 다 가고 있다. 아무리 묵은 해가 불행했어도 세월은 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현명하게도 시간의 흐름을 1년 단위로 매듭지어 새 출발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두 달 뒤면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 제발 새해에는 거짓과 위선이 발 못 붙이고, 정직과 신뢰가 넘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경제가 활성화돼 국민이 발을 쭉 뻗고 편히 살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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