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고가 발생한 태안군 앞바다에 이르는 도로변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으로 가득 찼다. “자원봉사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힘이 기적을 이뤘습니다...” 사고 직후부터 자원봉사자들의 복구 지원이 연일 끊이지 않았다. 죽음을 연상하는 검은 기름을 걷어내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천군만마와 다름없다는 내용이다. 날벼락 같은 원유유출 때문에 생계마저 끊긴 상태에서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표시리라.

세계가 놀란 자원봉사의 힘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하기 전 태안군청 상황실을 잠시 들렀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유출된 원유로 뒤덮인 검은 바다가 거의 태안군의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이 죽음의 기름을 걷어내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일손이 필요할까. 계산이 되지 않았다. 상황실 근무자는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돌아선 상태라고 말했다. 상황의 반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절망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만리포 해수욕장에 가까이 다가가자 역한 기름 냄새가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는듯했다. 해안가에 줄지어 놓아둔 어른 키 높이만한 함지박들에는 죽음의 기름과 벌인 사투의 흔적이 역력했다. 온통 검은 기름으로 뒤범벅이 된 함지박들은 육안으로는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되찾은 만리포 해수욕장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긴박했던 상황을 회상하는 것처럼. 인간의 실수가 이런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몰랐느냐며 항의하는 모습이다.

해양경찰청은 17일 현재 원유유출로 오염된 모래해변은 응급방제가 마무리됐고 오염된 해안의 70%이상이 방제된 것으로 발표했다. 기름제거작업에 관한 한 신속했다고 할 만하다. 사고현장을 방문한 외국의 전문가들도 기름제거작업의 진척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1-2개월 정도 걸릴 기름제거작업을 일주일여 만에 해냈다며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을 높이 평했다. 그런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실토하는 외국 전문가도 있다. 사고발생 자체는 내세울 것 없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대응에 대한 평은 인상 깊다.

돌아오는 길에 현수막의 내용을 다시 봤다.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담백한데다 미사여구도 없다. 그러나 진심 그 자체가 틀림없으리라. 함께 한 이들도 감동했는지 ‘위대한 대한민국’이란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자원봉사자들은 위대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너도나도 달려가 죽음의 문턱에서 헐떡이는 태안 앞바다의 목숨을 연장시켜 놓았다. 현장에 직접 오지 못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성금과 성품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태안군청 마당에 계속되는 성품 실은 자동차 행렬이 이를 말해준다.

대선에서도 저력 보여주길

반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말끔한 만리포 해수욕장 백사장 한 가운데 판 웅덩이에 떠 있는 검은 흡착포가 바로 그것이다. 백사장으로 스며든 원유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 기름은 여러 장의 흡착포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백사장은 겉으로만 멀쩡하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다른 곳을 파도 마찬가지리라. 죽음의 손길은 이미 백사장 깊숙이 틀어 박혔다고 봐야 한다. 생태계를 구하는 길은 이제부터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 감사의 현수막 사이에 간간히 보이는, 기름 냄새 머금은 바람에 펄럭이며, 자기가 최고라며 찍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선거현수막이 뻔뻔스럽게 다가왔다. “자원봉사자들은 위대한데, 여기에 정치만...”하고 말끝을 맺지 못한 한 상황실 근무자의 탄식이 맴돈다. 상황실 근무자가 못다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인들은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는 것일까, 말만하면 거짓말하는 정치인이 신물 난다는 것일까.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자원봉사자들이여, 그 위대함을 대선에서도 보여줄 수 없나요? <정치행정부 시청팀 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