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맞은 태안 주민들 공황상태

“모항은 이제 절단난겨.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와. 이런 기름 속에서 캔 해삼·전복을 누가 사먹겠느냐고.”

20여대의 어선이 수십박스의 유흡착재(기름종이)를 싣고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 방파제 인근으로 진입했다. 100여 명의 어민과 해녀들은 코를 찌르는 듯한 기름 냄새를 뒤집어 쓰면서도 기름바다에 종이를 던져 걷어 올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굴과 전복 등을 채취하는 자연산 양식장이 몰려있는 충남 태안군 모항리에는 검은 기름과 함께 매캐한 악취가 계속 번졌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 온 해녀들은 시커먼 기름띠를 가리키며 “이런 물 속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50년 동안 ‘물질’을 해온 임복희씨(70·충남 태안읍 모항1구)는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전복 캐러 물에 들어가야하는데 내가 왜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남편 없이 4남매를 키워올 수 있었던 터전이 이곳 모항 앞바다였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가 터진지 3일째 이들 어민들의 가슴도 바다와 함께 시커먼 기름으로 꽉막혀 있었다.

해녀 40여 명이 모항에 모여 이른 아침부터 유흡착재와 대형 주걱 등을 사용해 기름을 걷어내지만 끝없이 파도에 밀려들어오는 검은 기름띠는 오히려 두텁게 쌓여만갔다.

해녀 김모씨(51)는 시커먼 기름때가 가득한 바위의 굴을 가리키다 끝내 눈물을 보이며 “나는 밭도 없고 논도 없이 바다만 보고 40년 살아왔는데 누가 대책을 세어줄거냐”고 하소연했다.

청정해역으로 어류 가두리 양식장 39㏊, 전복 가두리 양식장 1㏊ 등 445곳에서 5647㏊의 양식어업이 삶의 터전인 인근 주민들은 종일 대책 회의를 했지만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걱정에 눈물이 앞을 가려 할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민 송기찬씨(45)는 “군과 경찰이 유화제를 아무리 뿌려봐야 기름이 가라앉는 거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이것이 기름과 함께 가라앉으면 오염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가슴을 쳤다.

45년 째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국익환씨(62)도 “생전 이런 바다를 본적이 없다”며 “특히 올해는 꽂게가 풍년이었는데 앞으로 10년은 모항산 전복, 해삼, 꽃게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울분을 삼켰다.

겨울장사를 준비하던 횟집 등 상가는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 상인들도 방제작업에 투입돼 기름띠를 제거하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방대해 막막한 상황이다.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공춘자씨(여·64)는 “어제만 전화로 8개 팀이 예약을 취소했다”며 “바다만 믿고 있는 5명의 해녀들은 벌써 제주도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봉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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