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ICU)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통합추진 결정을 내린지 3주가 지났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조용하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렇다. ICU는 통합추진기구도 아직 발족하지 않았다. 통합추진을 결정한 정부에서도 세부적인 제안이 없는 상황이다. ‘통합하는 게 맞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속이 타는 것은 오히려 KAIST다. 통합추진에 여러 걸림돌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산지원이다. 예산지원이 확보되지 않는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남표 총장 등 KAIST 고위 인사들이 관련 부처 관계자들을 수시로 만나고 있지만 속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정부는 ICU 소유의 서울 건물을 매각해 예산으로 쓰라는 입장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KAIST와 ICU의 물리적인 통합은 큰 의미가 없다. 건물과 학과를 합치는 수준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KAIST와 ICU의 통합은 전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화학적 통합이어야 한다. 서 총장도 그런 방향으로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통합을 세계적 명문 이공대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돈이다.

ICU가 9년 만에 문을 닫게 된 책임의 상당부분은 정부에 있다. 법적 위상이나 정부 지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ICU 허운나 전 총장은 이임사에서 “ICU를 멋지게 일구고 가꾸기는 커녕 고작 10살 밖에 되지 않은 사랑스런 자식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버리기로 결정한 정부와 국회를 향해 눈을 흘겨보고 싶다”고 했다.

허 총장의 표현대로라면 자기가 낳고는, 못기르겠다고 입양을 결정한 셈이다. 입양 결정만 내린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부가 통합 후의 비전과 지원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또 다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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