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의 최대 이슈인 BBK사건수사결과가 어제 발표됐다. BBK 대표 김경준 씨의 주가조작과 횡령 등 사기행각에 이명박 후보의 개입 혐의가 없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법률적으로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며 크게 반겼다. 반면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와 민노당 권영길 후보 등은 즉각 유세를 중단한 채 검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항의시위를 벌였다. 특검법안도 제출했다.

헐뜯기 끝내고 정책대결을

BBK사건 수사발표 이후도 대선 판은 당분간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또 다시 상대 후보 헐뜯기와 네거티브 공세만 판칠 것이고, 국민들의 정치혐오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제 공허한 헐뜯기 공방을 끝내고 정책대결로 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후보들 간의 합종연횡이 대선 판을 더욱 흔들고 있다. 최근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의 이회창 후보와의 단일화선언, 정몽준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시도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이회창 후보와 범여권의 정동영 또는 문국현 후보 등 삼자 간 대결로 압축돼 마치 중국의 삼국지 같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될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 대선은 대부분 삼분지계로 치러졌다. 민주화로 직선제가 채택돼 처음으로 실시된 87년에는 노태우가 김영삼 김대중을, 92년은 김영삼이 김대중 정주영을 제치고 당선됐다.

97년에는 김대중이 김종필 이회창과 3자구도로 싸우다 DJP연합으로 이겼고, 2002년에는 노무현이 정몽준과 연대해 역시 이회창을 꺾고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올 대선 3자 구도는 누가 가장 유리할까. 지지율 40%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물론 가장 유리하다. 이 후보는 그동안 자녀위장전입과 위장취업 등으로 엄청 두들겨 맞았다. 심지어 신문 방송광고에서까지 흠집 많은 후보로 매를 많이 맞았다.

하지만 지지율은 끄떡없었다. 더욱이 어제 검찰로부터 받은 BBK사건 면죄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 됐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장애물을 걷어내 지지율을 더욱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란 모르는 법이다. 대선이 10여일이나 남아 있고 앞으로 또 무슨 큰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워낙 흠집이 많은 후보여서 더욱 그렇다. 검찰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 해서 이 후보의 도덕성 의혹을 완전히 떨쳐버렸다고 할 수도 없다.

또 이회창 후보 말마따나 앞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큰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정동영 후보가 문국현 후보와 단일화하고 이어 이회창 후보와도 단일화를 안 한다는 보장도 없다. 경제하나 잘 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지금까지 묵묵히 그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변심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의 대선 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정책대결은 온데간데없이 고소·고발이 춤추고, 상대방 헐뜯기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국민이 신물 내는 헐뜯기는 이제 그만두고 정책대결로 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흠은 있게 마련이다. 이회창 후보와 정동영 후보도 흠집이 적지 않다. 이 후보는 정계은퇴번복, 경선불복, 차떼기불법대선자금 등으로 대쪽 같은 이미지가 많이 훼손됐다. 정동영 후보 역시 박스 떼기, 폰 떼기 경선과 합당무산파동 등 흠집이 적지 않다. 네거티브로 일관해온 선거운동도 감점이다.

감성보다 이성으로 선택을

이 같은 유력후보자들의 흠집으로 유권자들은 더욱 혼란스럽다. 누구를 찍을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기권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이래선 안 된다. 유력 후보들은 흠집도 많지만 장점이나 자랑할 만한 것도 적지 않다. 청계천 복원으로 대변되는 이명박은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CEO 출신이다. 귀공자 스타일의 정동영은 50대 초반의 나이에 집권당 의장 2번과 통일부 장관(부총리)을 지냈다. 이회창은 국무총리와 제1야당 총재까지 지낸 인물이다.

누구 하나 손색없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기권은 안 된다. 신문 등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국정수행능력, 도덕성 등을 나름대로 검증하고 그중 자신이 볼 때 제일 낫다는 후보를 고르자. 또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선택해야 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도 아니면 차악이라도 꼭 찍자. 투표는 민주국민으로서의 의무이며 최후의 심판은 유권자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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