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계절에 딱 맞아떨어져서 그런지 지난주에는 각 신문마다 서평 코너에 미국의 인지심리학 박사인 드루 웨스턴이 지은 ‘The Political Brain’, 즉 정치적 두뇌라는 책이 일제히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선거 때 유권자들은 지성이 아니라 감성에 따라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유세 당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고령자 의료보장제도와 관련한 토론을 했는데 고어는 복잡한 숫자를 제시하며 똑 부러지게 공격을 했지만 부시는 “이분은 늘 숫자로 얘기합니다. 인터넷을 발명했을 뿐 아니라 계산기까지 발명했나 봅니다”라며 유머가 담긴 한마디로 반격해 후한 점수를 얻었다. 유권자들의 눈에 비친 고어는 이성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논리가 정연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냉담한 정책가의 이미지였고, 부시는 딱딱한 워싱턴의 정치가가 아니라 부드럽고 유머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유세 기간 중 각 당의 선거전략가들은 말 한마디에서부터 행동 하나까지 모든 것을 치밀한 계산 하에 움직이도록 후보들에게 주문한다.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하고 따뜻한 말과 겸손한 몸가짐이 최고의 선거 전략임을 틈만 나면 주입시킨다.

본격 선거전에 들어간 우리 대선에서도 이같이 감성을 사로잡는 유세전이 빠질 수는 없다. 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일견 보기엔 훌륭한 정치적 약속인 것 같지만 청와대 하면 범접하기 어려운 으리으리한 구중궁궐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소시민들에게 나도 평범한 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새겨주기 위한 감성적 접근법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참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한마디로 유권자들의 감성을 사로잡으려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한 말이 유행한 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사무실 개소 첫날 책상 위에 올라가 즉석 연설을 하는가 하면 매일 똑같은 점퍼를 입고 유세현장을 누비며 귀족이미지를 떨치려 애쓰고 있다. 이러한 감성적 접근법은 유권자의 표심 변화를 유도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에 후보들은 가는 곳마다 ‘감성 유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고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네거티브식 감성자극도 판치고 있다. 이번 선거전은 정책대결은 뒷전이고 범여권과 한나라당 후보 간의 이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한 보수·진보의 한판 대결도 예상됐지만 그마저 실종돼 희한하게 흘러가고 있다. ‘BBK’를 통한 ‘역전의 한방’을 노리는 이상한 선거가 되고 있다.

지금 정동영 후보측은 이명박 후보의 각종 비리의혹에도 요지부동인 지지율에 속이 탈 대로 타고 있다. 아들, 딸의 위장 취업, 이 후보 자신의 탈세 등 각종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변함없는 지지율에 “이런 선거는 처음이다”라는 장탄식이 나올 정도다. 반면 이명박 캠프에서는 어떻게든 말려들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아예 맞대응조차 않고 있다. 이제 유권자들도 학습효과가 생겨 웬만한 네거티브에는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다. 이명박 후보의 BBK와 관련된 각종 의혹은 검찰이 수사결과로 내놓을 것이다. 도덕성에 대한 판단은 그때 가서 유권자들이 할 몫이다.

어느 정당이 됐건 유권자들의 부정적 감성을 자극하는 네거티브식 선거운동은 지양하고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진흙탕속 싸움의 고리를 끊고 선진적 선거문화를 보여줄 때가 됐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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