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정갈한 일본의 시골마을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천수원(天壽園)의 상징 역시 고래다. 활동무대가 넓은 고래처럼 천수원의 노인에 대한 복지서비스와 보호·지원은 매우 다양하고 포괄적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5m를 넘는 돔형 공간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의사의 지휘하에 노인들이 물리치료를 받는다. 복도 끝이나 지하 물리치료실에 위치한 한국의 병원과는 다른 배치다.

치매노인을 비롯, 일시적으로 입주해 생활하는 노인들의 주거공간은 현관 형태를 갖추었고 입주자들은 모두 문패를 내건다. 자신의 집과 같은 일체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려는 배려에서다. 기본적으로 1인 1실의 배치였고,천장의 높이는 3m가 넘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일반 노인시설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특별한 약품을 쓰지 않고 매일 목욕을 시켜드리고 잦은 환기와 청소로 노인들의 냄새를 없앤다”는 것이 비결 아닌 비결이다.

이곳의 노인 그룹홈은 모딜리아니의 작품과 같은 단순하고 강렬한 색상이 조화된 단독가옥이다. 유연한 동선과 어디서나 밖을 응시할 수 있는 공간 등 노인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와 한줌의 빛이라도 더 수용하려는 구성이 뛰어나다. 보고 듣고 참여하는 주방도 강점이다. 물론 모든 변기는 센서로 작동된다. 또 충분한 경력을 갖춘 시설장과 도우미들이 노인들과 주야를 함께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요인 중 하나는 일본의 개호보험이다. 물론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일본의 노인복지를 실현케 하는 실질적인 기제임에 틀림이 없다. 사회복지정책과 서비스를 지역의 실정에 맞게 설계하고 실행하며, 전문가를 교육하는 지역사회복지협의회의 역할도 절대적이다. 정부와 지자체장들의 사회복지에 대한 지원과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인구의 20%가 65세가 넘는 일본 노인들의 삶의 질은 우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예산타령은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의 경우 이대로 간다면 노인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복지는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나라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한 노년들에게 편안한 삶과 활력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복지는 보다 생산적인 개념에서 인정되고 준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안타까운 것은 신자유주의와 경쟁력이라는 세에 밀려 복지가 마치 성장의 발목을 잡는 ‘괴물’인 양 묘사되는 현상과 편협된 시각이다. 지극히 불안한 사회안전망, 질과 양적인 면 모두 부족한 복지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해야할일은 넘쳐나고 예산과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시간도 촉박하다.

후보들 복지정책 적극 수용을

흔히들 선거철이면 아젠다 창문(election agenda window)이 열린다고 한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각 당과 후보들이 주민들의 욕구충족을 위한 정책과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을 설명한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통령후보 진영에서는 복지에 대해 총론적인 언급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성장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 복지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미래의 삶을 위한 청사진과 대책, 그리고 재원마련을 위해 고뇌하는 대선후보자들의 모습은 도피자의 강제송환 생중계나 이합집산·비방에 밀려 찾아보기 어렵다. 때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대선은 복지정책의 창문이 활짝 열리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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