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60년사에서 일찍이 이런 선거는 없었다. 결승점이 눈앞이건만 선두 주자만 보일 뿐 다른 선수들은 까마득하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도무지 선거판 같지가 않다. 야당 주자는 5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범여권 1위 후보 지지율은 갓 20%를 넘어섰다. 해보나 마나한 게임이라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D-56 상황에서 믿거나 말거나 식의 변수와 가설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끝까지 고공비행을 할 지다. 재산 문제로 낙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치명상을 우려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승리를 자신하는 이 후보 캠프 내부에서도 경계하는 대목이다. 막판에 결정적 타격을 입고 제대로 대응 한번 하지 못한 채 추락한다는 시나리오가 범여권을 중심으로 정가에 유포된 지 오래다. 이 후보 지지자들도 이 점에 대해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하나는 범여권의 단일화 여부다. ‘11월의 추억’이 달콤한 입장에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선택이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대역전극의 시발은 11월이었다. DJP 연합(1997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2002년)는 단숨에 판세를 뒤집는 마술쇼였다.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이 지배적이기는 하다. 대상자들의 지지율이 미약해 단일화에 성공하더라도 그 효과는 크지 않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투표일까지는 두달이 남았다. 한국 정치에서 이 정도의 시간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는 정치는 우리처럼 후진적 선거 행태를 가진 나라에서 막판에 더욱 예측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 요술을 부린다. 56일 동안 560일에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터지는 곳이 여의도다. 자력 승리가 가능하다는 여론조사를 놓고도 전전긍긍하는 것이나 꿈과도 같은 뒤집기에 올인하는 것 모두가 이같은 정치 풍토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우리 선거사가 그려낸 굴곡된 자화상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은 혼란스럽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설과 시나리오 앞에서 현기증이 난다. 투표일에 가까워질수록 눈과 귀를 흐리게 하는 일들이 시한폭탄처럼 터져 나올지 모른다. 특히 차기 검찰총장의 후임자 내정을 공언한 대통령에 대해 복잡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대선 후보의 각축장이 된 현실에서 11월 말에 있을 차기 총장의 인사청문회장 성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교과서적으로만 보자면 선거는 집권당에 대한 심판이다. 잘했으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고, 잘못했으면 바꿔버리는 게 선거다. 후보들마다 ‘시대 정신’을 강조하지만 국정의 공과에 대한 평가라는 선거의 본질은 달라질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강 정책 보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선거판을 망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대선 가도의 종착점으로 갈수록 가변성과 불확실성은 더해질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이 낫다’는 비아냥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자유당 때 일이다. 그럼에도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는 ‘못살겠다 갈아보자’-‘갈아봤자 별수 없다’는 구호로 대의민주정치의 한 전형을 보여줬다. 올해 대선 캠페인도 이처럼 단순명료해질 수는 없을까. 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나는 참여정부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도망칠 생각은 없다”라고 말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고육지책이겠지만 그는 모호하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면서 집권 5년에 대한 평가 기회를 국민에 넘겼다.

네거티브도 그러려니와 선거의 본질을 벗어난 시대 흐름 왜곡, 정당정치 원칙 훼손은 이만하면 됐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메시아적인 지도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혹세무민 대신 여당은 성적표를, 야당은 청사진을 내놓으라. 거기에 처칠이 말한 그대로 ‘피와 노고, 눈물과 땀’의 약속이 보태졌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잘났든, 못났든 유권자의 몫 아니겠는가.

송신용<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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